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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홍상수 감독의 우리 선희 - Journeyman이 바라본 세상
홍상수 감독의 우리 선희

선희

이상한 일이다. 특별한 미모의 소유자도 아닌데 모든 남자들이 그녀 앞에서 꿈뻑 죽는다. 때로는 내숭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저돌적인 여자. 단아해 보이지만 때로는 당돌한 여자. 그녀는 어떤 여자길래 세 명의 남자들이 그녀 곁을 맴돌며 눈치를 보는 것일까. 그녀의 매력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홍상수 감독의 신작 ‘우리 선희(Our Sunhi, 2013)’의 선희 이야기다.

영화 ‘우리 선희’는 오래도록 연락이 끊겼던 선희(정유미)가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영화에 대해 더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알아보던 선희는 담당 교수의 추천이 필요했고 그를 부탁하기 위해 학교로 향한다. 그 길목에서 가장 먼저 만난 남자는 상우(이민우)였다. 선희에게 상우는 그저 아는 선배 이상은 아닌 듯했으나 상우에게 선희는 한 때 마음에 품었던 후배 그 이상으로 보였다.

그러한 관계는 선희에게 끈적한 눈길을 보내는 상우와 달리 건조한 대꾸에 그치는 선희의 반응에서도 알 수 있다. 차 한 잔 마시자는 상우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끊는 선희의 행동도 그러한 심적 결과일 것이다. 상우에게 있어 선희는 귀여운 후배일지 몰라도 선희에게 상우는 귀찮은 선배일 뿐이었다. 서로의 감정이 엇갈린다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아닐 수 없다.

선희가 두 번째로 만난 남자는 유학에 필요한 추천서를 써줄 최교수(김상중)다. 하릴없이 교정에서 오후의 햇볕을 즐기던 최교수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선희가 반가우면서도 당혹스럽다. 여지껏 연락을 끊었다가 정작 필요가 생기자 이제서야 찾아왔다는 점이 몹시 괘씸하기까지 하다. 그러한 최교수의 심리상태는 그가 써준 추천서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선희는 당장 최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만날 것을 요구하고 그에게 삼십 분만 더 자신에 대해 생각해 달라고 부탁한다.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최교수는 그동안 연락이 끊긴 점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고 그렇게 술에 취한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어디론가 향한다. 그런 다음 선희가 얻은 수정된 추천서에는 이전과 달리 온통 칭찬으로만 가득하다. 선희는 몸을 주고 최교수의 마음을 얻은 셈이다.

선희가 세 번째로 만난 남자는 한때 연인(캠퍼스 커플)이었던 문수(이선균)다. 최교수에게 추천서를 부탁한 후 바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 앞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며 기다린 끝에 만날 수 있었다. 선희는 벌써 문수를 연인이 아닌 그저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는 듯 보이나 문수는 아직까지도 연인으로서의 선희를 잊지 못하고 있는 상태. 1년 만에 만난 연인이 반갑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무슨 이유로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것인지 분명하지 않듯 선희는 여전히 문수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문수만 혼자서 애가 탈 뿐이다. 그 괴로움을 술로 달래보려 하지만 달래지지 않고 좋아하는 선배 재학(정재영)에게 위로받고 싶어 하지만 위로가 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여러 가지로 심란한 재학은 그런 시답잖은 일로 자신을 불러낸 문수가 여간 마뜩잖다.

선희가 네 번째로 만난 남자는 다소 뜻밖이다. 오랜만에 만난 선희에 대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문수나 선희와 몸을 섞은 후 들뜬 기분으로 돌아간 최교수가 찾아간 남자 재학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선희에게는 학교 선배이자 영화판 선배이니 선희가 재학을 찾아간 것에 대해서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재학의 집 앞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던 선희와 재학의 만남이 그리 우연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선희에 대한 네 남자의 감정은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하고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들 선희라는 여자에 대한 감정이 보통 이상이라는 점이다. 선희와 어떻게 해보고 싶어하는 상우(이민우)나 술김에 선희를 품에 안은 최교수(김상중)나 다시 연인의 신분으로 돌아가고 싶은 문수(이선균)나 선희가 의지하고 싶은 좋은 선배 재학(정재영)이나 다 마찬가지다.

어쩌면 네 남자 모두 선희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선희는 그저 추천서가 필요(최교수)했고 술친구가 필요(문수)했으며 영화판에서 자신을 지원해 줄 우군이 필요(재학)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선희가 냉정하고 단호하게 상대한 남자는 상우가 유일하다. 따지고 보면 선희에게 상우는 불필요한 존재였다. 추천서를 써 줄 것도 아니고 술친구로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며 영화판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도 아니었던 탓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여자의 어장관리에 놀아나는 남자도 불쌍하고 그 안에 들지 못하는 남자도 비참해 보인다.

이렇듯 ‘우리 선희’는 선희가 만나는 네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 그렇듯 거칠지만 그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매끄러운 편집에 익숙한 입장에서는 이런 거친 연출이 다소 불안하게 보이는 건 사실이다. 거의 모든 장면이 끊기지 않고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점은 신선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영화 참 편하게 찍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정유미라는 배우의 매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김상중이나 정재영, 이선균, 이민우와 같은 노련한 연기자들 틈에서도 가장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홍상수 감독이 왜 정유미를 자신의 거의 모든 영화에 등장시키는지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정재영의 단골인 ‘아리랑’이라는 술집에 가고 싶어지는데 찾아보니 안국동 풍문여고 뒷쪽에 있었다. 언젠가 그곳에서 술 한잔 하고 말리라.

우리 선희(Our Sunhi, 2013)
드라마 | 한국 | 89분 | 2013.09.12 개봉 | 감독 : 홍상수
출연 : 정유미(선희), 이선균(문수), 김상중(최교수), 정재영(재학), 이민우(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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