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 온 세상이 깊은 잠에 빠져들기 시작할 때면 은밀히 깨어나는 사내가 있다. 그 이름은 윌리엄 머독. 단정한 용모와 반듯한 성품을 자랑하는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깨어 있어야만 한다. 잠에 빠져드는 순간 그를 놓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매주 화요일 밤 12시는 머독과 만나야 하는 시간이다.
‘머독 미스터리(Murdockh Mysteries)’는 캐나다 토론토 경찰 소속 형사의 활약을 그린 드라마다. 라스베가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과학수사드라마 ‘CSI’나 ‘CSI 마이애미’, ‘CSI 뉴욕’을 비롯해서 ‘NCIS’, ‘성범죄수사대 SVU’ 등 수사 드라마는 흔하디 흔하지만, 그중에서 이 드라마가 특별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캐나다 드라마라는 점과 그 시대적인 배경이 1890년대라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형사 머독이 있다.
이 드라마는 ‘CSI’ 시리즈처럼 치밀한 과학수사를 자랑하지는 않는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아무래도 투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열악한 그 시절에도 나름대로의 과학수사를 펼쳐서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낸다는 점은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부검을 통해서 사망 시각을 밝히고 혈흔을 통해서 사망 이유를 알아낸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머독의 통찰력이 발휘되면 해결하지 못할 사건이 없다. 어쩌면 ‘CSI’가 울고 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의 매력은 ‘CSI’처럼 사건을 명쾌하게 풀어가는 데 있지 않다. 19세기라고 하는 시대적 배경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머독은 항상 단정한 정장 차림이고 외출할 때면 모자를 꼭 챙긴다. 어디에서든지 흐트러진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머독뿐만이 아니다. 머독을 도와 각종 단서를 제공하는 검시관 줄리아 오그던 역시 언제나 드레스 차림이다. 드라마 전반에 품위와 품격이 흘러넘치는 이유다.
이 드라마에서 머독은 그야말로 바른생활 사나이다. 법을 집행하는 입장이지만, 예의를 존중하는 사내로 살인 사건 현장에 도착해서 사망자를 확인하는 순간 성호부터 긋는다. 사망 이유야 어떻든, 죽은 사람이 누구든 망자에게 예의를 갖추어 명복부터 비는 것이다. 가슴이 따뜻한 남자라는 사실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런 사람이다 보니 사건 해결에도 성의를 다한다. 망자를 위한 최선의 위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머독은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꽉 막힌 사내이기도 하다. 머독과 줄리아의 사랑이 무르익어갈 즈음 줄리아의 오래전 낙태사실을 알게 된 머독은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철없던 시절 줄리아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했으나 당시에 낙태는 중대한 범죄였고 법을 집행하는 머독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그런 점은 오히려 매사에 치우치지 않는 수사를 기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출연진은 비교적 단촐한 편이다. 윌리엄 머독 형사 역을 맡은 얀닉 비손과 검시관 줄리아 오그던 역의 헬렌 조이, 그리고 조지 크랩트리 순경 역을 맡은 조니 해리스와 토마스 브래켄리드 경감 역을 맡은 토머스 크레이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너무 단촐하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기에 오히려 적당한 재미가 있는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2008년부터 시작된 ‘머독 미스터리’는 캐나다 드라마로서는 보기 드물게 전 세계적인 흥행에 힘입어 현재 시즌6까지 제작된 상태다. 현재 교육방송(EBS)에서는 브래캔리드 경감의 어린 아들의 납치를 그린 시즌3 에피소드 4 ‘Rich Boy, Poor Boy’까지 방송된 상태다. 교육방송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방송해줄런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최소한 시즌4까지는 해주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각 시즌이 13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앞으로도 20여 편은 남은 셈이다. 물론 최신편까지 해주면 고맙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