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 영화 ‘컨저링(The Conjuring, 2013)’ 포스터에 쓰여있는 문구는 나 같은 겁쟁이에게는 신선한 도전과도 같은 것이었다. 화제작임에도 불구하고 잔인하거나 끔찍한 장면들 때문에 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다른 공포영화들과는 달리 한 번쯤 봐볼까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시기에 달리 볼 영화도 없었고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니 봐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무서운 장면이 없다고 하기에 유령이 나오거나 초자연적인 내용보다는 심리극이 아닐까 예상했었다. 몇 편 되지는 않지만, 그동안 내가 봤던 공포영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샘 닐 주연의 1995년작 ‘매드니스(In The Mouth Of Madness, 1995)’였었다. 소설 속의 내용처럼 세상이 미쳐간다는 스토리의 영화였는데 비교적 짜임새 있었고 심장도 쫄깃하게 만들었던 나름대로 재미있게 본 영화였다.
하도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칭찬들이 자자하기에 나름대로는 ‘매드니스’ 정도의 영화를 기대했었고 아니면 니콜 키드먼 주연의 2001년작 ‘디 아더스(The Others)’ 정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귀신이 귀신이 아닌, 귀신 입장에서는 느닷없이 같이 살게 된 사람들이 오히려 귀신처럼 생각되는 그런 기묘한 상황 말이다.
그도 아니라면 사람이 귀신보다 무섭다고 하는 교훈(?)의 영화 ‘숨바꼭질(2013)’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주연급 배우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지난 2013년 8월 14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무려 700만에 가까운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대세로 자리 잡은 하정우의 ‘더 테러 라이브(The Terror Live, 2013)’의 흥행을 뛰어넘은 성적이었다.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라면 ‘숨바꼭질’이 먼저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컨저링’은 그런 기대를 무참히 짓밟아버린 영화였다. 사람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심리극도 아니었고, 다른 스릴러와 달리 기묘한 상황의 영화도 아니었다. 그저 또 하나의 ‘엑소시스트(Exorcist)’ 수준의 영화일 뿐이었다. 실화에 기반을 두고 있고 카톨릭에서 인정받는 유일의 악마연구가라는 점은 나름대로 흥미롭기는 했으나 스토리가 기대만큼 재미있거나 신선하지는 않았다.
이 영화에 대한 줄거리를 보자. “1971년 로드 아일랜드, 해리스빌. 페론 가족은 꿈에 그리던 새집으로 이사를 간다. 물론 1863년에 그 집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 사건을 전혀 몰랐다. 또한, 그 이후에 일어난 많은 무서운 사건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이 가족은 그 집에서 겪은 일이 너무 무서워서 한 마디라도 외부에 언급하는 것을 거절했었다. 지금까지는…”
줄거리만 봐도 분명 다른 공포영화와는 달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설정은 비슷해 보여도 특히 마지막 부분 “이 가족은 그 집에서 겪은 일이 너무 무서워서 한 마디라도 외부에 언급하는 것을 거절했었다”는 부분에서는 소름이 돋기도 한다. 그래도 실화라고 하니 터무니없지는 않겠다 싶었고 무서운 장면도 없다고 하니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으로 보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오래전 TV에서 했었던 ‘토요 미스터리 극장’처럼 귀신이야기에 불과했으며 이를 퇴치하는 과정은 ‘엑소시스트’와 다르지 않았다. 끝 부분에서는 엄마에게 들어간 악령을 쫓는다며 액소시즘 의식을 실행하기도 한다. 우리식으로 치면 일종의 굿이다. 다만 카톨릭식이냐 아니면 샤머니즘식이냐만 다를 뿐이다. 그러니 실소가 나지 않겠는가. 주인공의 엑소시즘도 긴박해 보이기보다는 다소 어설퍼 보이고.
또한, 스토리의 연결 고리가 상당히 빈약하다는 부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집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는 점은 대충 알겠는데 그 ‘왜’라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고 해도 많은 부분 손을 댔을 테니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 부분을 조금 더 명확하게 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엑소시즘 후에 엄마에게 들어간 악령과 다른 유령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도 이해 불가한 부분이다. 설마 오르골에 다 들어갔으려나.
무서운 장면이 없다는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놀란 장면은 딱 두 번이다. 하나는 지하에 갇힌 엄마 옆으로 불쑥 손이 튀어나와 박수치는 부분인데 이 장면은 예고편에도 나오니 스포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긴 나는 예고편으로 보고도 또 놀랐으니… 다른 하나는 장 위에 있던 귀신이 달려드는 장면인데 이 장면의 의미를 도통 모르겠다. 그렇다고 딸의 몸속으로 귀신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사실 지어낸 얘기라면 그저 가슴 한번 쓸어내리면 그만이지만 실화라면 비교적 오래 여운이 남을 수밖에 없다. 특히 악마나 악령이 없다고 믿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는 혼란 때문이다. 누군가 당했다면 나라고 당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그런지 영화를 보고 나서도 비교적 덤덤한 편이었는데 내가 그만큼 더 성숙해진 탓일까 아니면 이 영화가 함량 미달인 탓일까…
컨저링(The Conjuring, 2013)
공포 | 미국 | 112분 | 2013.09.17 개봉 | 감독 : 제임스 완
출연 : 베라 파미가(로레인 워렌), 패트릭 윌슨(에드 워렌), 릴리 테일러(캐롤린 페론), 론 리빙스톤(로저 페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