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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만나지 못할 줄 알았다. 그렇게 헤어졌으면 다시 만난다고 해도 반갑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면서 평생 용서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5년 만에 다시 만난 그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죽어라 싸우고도 다시 만나 닭살 행각을 벌이던 시절로 돌아간 듯 싶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기억하고 있고 자신이 싫어하는 계란 노른자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와 헤어지고 좋은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가정적이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 사이 유치원에 다니는 딸도 얻었다. 이게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가정적인 남자와 토끼 같은 딸을 키우며 사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결혼하자는 말에 불같이 화내며 떠나간 그 남자와는 차라리 헤어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남자와는 죽어도 이런 행복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5년이란 세월이 문제였다. 이미 익숙해진 남편은 서서히 지겨워져 가고 있었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즈음 그가 나타났다. 마치 운명처럼 자신이 근무하는 직장 직속 팀장이 되어 다가왔다. 그리고는 은밀한 만남을 가지기 시작했다. 연인 시절보다 더 짜릿한 흥분이 몰려왔다. 남편보다 오히려 자신을 더 많이 아는 남자에게서 여자는 무너지고 있었다. 다시 그와 사랑하고 싶어졌다.
– 2 –
더 이상의 사랑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한 여자를 만났고 가정을 꾸렸으며 아이도 낳았으니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었다. 하지만 사랑은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왔다. 무려 스무 살이나 차이 나는 여자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를 만나고서는 조금씩 달라지는 자신이 신기하기도 했다. 도대체 이 감정이 무엇인지 자신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녀만 보면 측은함이 앞섰다. 자신이 도와줘야 할 것만 같고 자신이 지켜줘야 할 것만 같았으며 자신이 곁에 있어줘야 할 것만 같았다. 아내는 자기가 없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연약한 이 여자는 그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면서도 동시에 대견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녀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앞선다.
– 3 –
5년 전에 가영(소유진)의 결혼하자는 말을 뿌리치고 달아났던 남자 도훈(김도현)은 5년 만에 비로소 청혼을 결심하지만 이미 가영은 남의 여자가 되어있었다. 도훈은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가영을 다시 자신의 여자로 만들겠노라고 다짐하지만 넘어야 할 장벽이 너무 많다. 결국, 가영은 도훈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살기로 마음먹으나 가슴이 아린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가영의 남편 찬우(정웅인)는 우연한 사고로 동네 꽃집 아가씨 아름(소희)과 만나게 된다. 당돌한 아가씨의 태도에 불쾌하기만 했으나 점점 아름에게서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내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다른 여자를 마음에 두다니 스스로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름을 외면하기에는 그녀가 너무 가엽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고백하려고 하지만 아름은 조용히 찬우의 곁을 떠난다.
– 4-
결국 변한 건 없었다. 가영은 다시 도훈의 아내로 돌아오고 도훈은 다시 가영의 남편으로 돌아온다.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서로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KBS2 드라마 스페셜 ‘Happy 로즈데이’는 옛사랑을 만난 아내와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다. 권태기에 접어든 아내는 다시 만난 옛 남자와 새로운 감정에 빠지게 되고 가정밖에 모르던 남자는 우연히 만난 어린 여자와 새로운 사랑을 꿈꾸게 된다.
얼핏 보면 불륜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사랑과 전쟁’처럼 추악한 내용으로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것은 그들의 탈선이 충분히 이해될만한 수준이기 때문일 것이다. 권태라는 이름으로 흔들리는 부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고 말하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고 사는 부부가 어디 있으랴. KBS2 드라마 스페셜 ‘Happy 로즈데이’는 단막극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만들었던 수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