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특이하다.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한국 배우가 주연인 한국 영화같이 보이지만 외화처럼 20세기 폭스사의 오프닝 로고를 달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행진곡풍의 트럼펫 소리가 낯익으면서도 동시에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상자에서 공이 튀어나와서는 쇼박스라고 외치는 오프닝을 기대했다면 다소 의아하게 생각될 수도 있는 일이다. 행여라도 상영관을 잘못 찾아 들어오지는 않았는지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다.
그런 어리둥절함은 영화가 시작되면서 더욱 심해진다. 새로 개봉한 영화이지만 전혀 새롭지 않은 내용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진부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어설프며 어디에선가 본듯한 장면들로만 채워져 있다. 이미 오래전에 본 영화 같고 마치 극장이 아니라 명절날 TV를 통해서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도대체 무슨 영화가 이 모양인 걸까?
마치 일요일 저녁 SBS에서 방송 중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영화로 옮겨놓은 듯한 선입견을 갖게 만드는 제목의 영화 ‘런닝맨’은 이처럼 어느 하나도 제대로인 것이 없는 영화다. 이 영화만 보면 한국영화의 수준이 다시 30년쯤 퇴보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때는 한국영화는 수준이 낮아서 보지 않는다던 말을 서슴지 않고 해대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한국영화의 수준이 그렇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기를 펴지 못하고 벌벌 떨게 만들 정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2년 개봉한 영화 중에서 10위 안에 든 외화는 어벤져스(3위, 7,074,867명), 다크 나이트 라이즈(5위, 6,396,615명), 레미제라블(6위, 5,723,513명), 어메이징 스파이더맨(9위, 4,853,123명) 등 4편에 불과했다(2013년 1월 31일 기준).
반면 한국영화는 사상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두 편(도둑들 12,983,330명, 광해: 왕이 된 남자 12,319,542명)이나 탄생하는 등 경사가 이어졌었다. 2013년 들어서는 그 불균형이 더 심해졌다. 새해 벽두부터 천만 영화에 등극한 7번방의 선물을 비롯해서 베를린, 신세계, 박수건달, 타워 등 상위 5편의 영화들이 모두 한국 영화인 것은 물론이고 상위 10편 중에서 외화는 3편(레미제라블, 지.아이.조2, 라이프 오브 파이)에 불과한 형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세기 폭스사는 외화를 들여오는 대신 아예 한국영화에 투자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고 그런 필요성에 의해 탄생한 영화가 바로 신하균 주연의 ‘런닝맨’이었다. 한국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한국영화가 아니라 20세기 폭스사의 헐리우드 영화인 셈이다. 오프닝에도 제작-배급사로 20세기폭스코리아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일종의 국적세탁인 셈이다.
그런데 이 영화 때문에 한국영화만 억울하게 생겼다. 한국영화도 아닌 것이 한국영화를 욕 먹일 소지가 다분한 까닭에서다. 신하균이 주연을 맡은 영화 ‘런닝맨’이 사실은 한국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영화가 다 그렇지’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야말로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외국자본 투자까지 받아놓고 도대체 무슨 영화를 이따위로 만든 건지 도통 모를 일이다.
런닝맨(2012)
액션, 코미디 | 한국 | 127분 | 2013.04.04 개봉 | 감독 : 감독 조동오
출연 : 신하균(차종우), 이민호(차기혁), 김상호(상기), 조은지(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