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 낭만으로 기억되는 건 순전히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1953)’이라는 영화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이건만 로마에 가면 그레고리 펙처럼 멋있는 남자가 웃으며 맞아줄 것만 같고 오드리 햅번처럼 청초한 여인과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실이야 어떠하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로마는 그렇게 낭만적인 도시로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그레고리 펙의 팔 잘린 모습 때문에 오드리 헵번을 기겁하게 만들었던 ‘진실의 입(Mouth of Truth)’은 전 세계적인 명소가 되기도 했다. 아직도 그곳에 가면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서 있기도 하다. 또한, 트레비 분수에 가면 동전을 두 번 던져 다시 로마에 돌아올 수 있기를 빌어본다. 로마에서는 모두 ‘로마의 휴일’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영원히 로마를 대표하는 영화로 남을 것만 같았던 ‘로마의 휴일’에 도전장을 내민 영화가 등장했다. 우디 앨런 감독의 ‘로마 위드 러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기다렸던 것은 그의 전작 ‘미드나잇 인 파리’ 때문이다. 마치 파리 관광청의 파리 홍보 영화 같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대놓고 파리를 찬양하던 영화였었다. 파리와 달리 로마는 어떻게 그렸을지 궁금하던 차였다.
두 영화 사이에는 뚜렷하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두 도시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반영된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2011)’에서 우디 앨런 감독은 파리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낭만적인 도시로 그린 반면 ‘로마 위드 러브(To Rome with Love, 2012)’를 통해서는 비교적 씁쓸한 현재를 강조했다. 내용만 놓고 보면 로마보다는 파리에 대한 애정이 더 느껴질 정도다.
이런 오해 아닌 오해는 로마에서 벌어지는 사건(에피소드)들이 다소 당황스러운 내용이라는 점 때문이다. 파리에 매력에 매료된 주인공(오웬 길슨)이 매일 자정마다 1920년대 예술가들을 만나고 돌아온다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설정보다 더 당혹스럽다. 파리의 이야기는 그저 판타지적인 성격에 불과하지만, 로마의 이야기는 충분히 있을 수도 있는 현실이라 더욱 그렇다.
로마에서의 이야기는 4가지를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하나는 젊은 시절을 로마에서 보냈던 건축가 존(알렉 볼드윈)과 젊은 건축학도 잭(제시 아이젠버그)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평범한 로마 시인에서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된 레오폴도(로베르토 베니니)의 이야기이며, 또 다른 하나는 로마로 신혼여행 온 신혼부부 밀리와 안토니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딸의 상견례를 위해 로마로 온 신부 부모(우디 앨런)의 이야기다.
파리에서 우디 앨런 감독은 상당히 점잖은 척했지만, 로마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파리에서보다 위트를 섞었고 재미를 추가했다. 4가지 이야기 중에서 무려 두 개의 스토리가 불륜과 관련된 이야기이고 그에 대해서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다들 이러고 살지 않느냐고 묻는다. 어떻게 보면 낯 뜨겁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원래 우디 앨런의 영화란 이런 거야’라며 말하고 있는 듯도 하다.
‘로마 위드 러브’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모두 인간의 본성과 관련이 있다. 멀쩡히 여자 친구를 두고도 여자 친구의 친구와 눈이 맞거나(잭)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 싶어하는(레오폴도) 이야기가 그렇다. 또한, 우연히 만난 콜걸과 사랑을 나눈다거나(안토니오) 평소 좋아하던 스타와 잠자리를 함께할 뻔하다가 호기심으로 강도와 몸을 섞게 되는(밀리) 이야기도 그렇다.
만일 그러한 상황을 맞게 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과 함께 모범 답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자 친구가 있지만, 매력적인 그녀의 친구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을 어쩌지 못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해도 그런 관심이 싫지 않으며 신혼이라 해도 섹시한 콜걸과의 관계에 묘한 흥미를 느끼게 되고 새신부일지언정 인기 스타나 강도와의 관계에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원하는 것을 가지라고 한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원하는 것은 선택하라는 말이었다. 이를 위해 경쾌한 노래 ‘Amada Mia, Amore Mio’를 배경으로 깔았다. 인생이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다만 우디 앨런식 유머 코드가 맞지 않으면 별다른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은 감안하고 영화를 보기 바란다.
로마 위드 러브(To Rome with Love, 2012)
코미디 |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 111분 | 2013.04.18 개봉 | 감독 : 우디 앨런
출연 : 알렉 볼드윈(존), 엘렌 페이지(모니카), 제시 아이젠버그(잭), 페넬로페 크루즈(안나), 로베르토 베니니(레오폴드), 우디 앨런(제리), 알리슨 필(헤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