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도 없고 재미도 없는 라스트 스탠드

라스트스탠드2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개그맨 김준호가 영화배우 최민수를 흉내 낼 때마다 써먹는 대사다. 하지만 이 대사의 주인은 최민수가 아니라 KBS2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백산 부국장으로 나오는 김영철이다. 영화 ‘달콤한 인생(A Bittersweet Life, 2005)’에서 “말해봐요, 정말 날 죽이려고 했어요?”라고 묻는 이병헌(선우 역)에게 김영철(강사장 역)이 건네던 대사였던 것이다. 엉뚱하게도 김준호로 인해 코믹한 느낌이 강해졌지만 최고의 명장면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달콤한 인생’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김지운 감독은 거액을 투자받아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The Good, The Bad, The Weird, 2008)’이라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완성시켰다. 1930년대 만주를 무대로 펼쳐지는 한 편의 서부극을 통해서 한국 영화의 지평을 넓혔다고 할 수 있었다. 화려한 볼거리에 비해서 스토리가 부실하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의 차기작을 기대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할리우드로 활동 영역을 넓히기에 이르렀다. 할리우드 자본으로 제작된 영화 ‘라스트 스탠드(The Last Stand, 2013)’가 그 신호탄이었다. 미국에서 먼저 개봉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놀드 슈왈제네거.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 1984)’로 유명한 바로 그 아놀드였다. 그 이름만으로도 뭔가 무지막지한 우격다짐이 나올 법하지 않은가?

하지만 아쉽게도 김지운 감독이 계산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좋은 액션배우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제대로 활용해야만 그도 빛나고 영화도 빛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려면 먼저 그에게 맞는 옷을 입혀야만 했다. 그러지 못하겠거든 차라리 발상을 뒤집는 것도 방법이겠다. ‘투루 라이즈(True Lies, 1994)’나 ‘쥬니어(Junior, 1994)’ 같은 코믹영화처럼 말이다.

김지운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자동차와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흐르는 마을 간의 대결이라고 했다. 이송 중에 탈출한 마약왕 코르테즈(에두아르도 노리에가)가 모는 튜닝 슈퍼카는 헬기보다 빠른 시속 450Km로 달리는 반면 일선에서 물러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보안관 생활을 하고 있는 레이(아놀드 슈왈제네거)가 펼치는 한 판 승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영화는 설정부터 그리 매력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일단 너무 뻔해 보인다는 게 가장 치명적이다. 어디선가 보았음 직한 설정인데다가 비록 시골 보안관이라고는 해도 결국 아놀드 슈왈제네거에 의해 일망타진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드는 내용일 게 뻔하다. 반전은 없을 것이고 그저 시간 죽이기용 킬링 타임 영화에 불과하리라는 예상도 그래서 가능해진다.

스토리에 대한 기대보다는 실망이 앞서다 보니 미국에서의 흥행실적도 그리 좋지 못한 편이다. 2913개 극장에서 첫 주말 63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극장당 수입은 2163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현지 박스오피스 순위는 10위였다. 이런 저조한 성적은 2013년 2월 21일 개봉한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 판정을 받으면서 첫날 관객은 8,221명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그럼 영화는 어땠을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관객 숫자가 말해주듯이 정말 형편없는 영화인 걸까? 사실 영화는 그럭저럭 볼만한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헬기보다 빠르다는 슈퍼카에 대한 묘사가 부족했고 FBI가 마약왕 코르테즈를 놓치는 과정이나 추격하는 과정 모두 허술하기만 하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소수 인원으로 악당을 모두 물리치는 장면도 통쾌하기보다는 실없는 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이제는 아놀드도 많이 늙었다는 사실에서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그의 나이 무려 예순일곱(47년생). 벌써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그래도 그에게 시골 보안관이라는 역할은 왠지 낯설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아놀드가 아닌 다른 배우가 주인공을 맡았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아놀드라는 배우의 상품성은 인정하지만 그로 인해 뻔한 결말이 예상되는 점은 대단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 먼저 개봉된 이 영화에 들어간 제작비는 약 3000만 달러, 원화로 환산할 경우 약 320억원 정도가 들어갔다고 한다. 헐리우드에서 메이저 영화와 독립영화를 구분하는 상한선이 제작비 5000만 달러라고 하니 이 영화는 독립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나마도 아놀드의 출연료가 1000만 달러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만큼이라도 뽑아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내야 할까.

라스트 스탠드(The Last Stand, 2013)
액션 | 미국 | 107분 | 2013.02.21 개봉 | 감독 : 김지운
출연 : 아놀드 슈왈제네거, 포레스트 휘태커, 조니 녹스빌, 로드리고 산토로, 제이미 알렉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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