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이와 이몽룡의 나이를 아는가? 열여섯이다. 이팔청춘이라는 말도 그들의 나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그럼 로미오와 줄리엣의 나이는? 로미오의 나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할 정도로 정확하지 않지만, 줄리엣은 14살이라고 한다. 어쨌든 요즘 시각으로 보면 사랑을 알기에는 지나치게 어린 나이가 아닐 수 없다.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의 나이들이 아니던가. 그야말로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란 말이 튀어나올 법하다.
그런데 더 한 녀석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나이는 12살. 춘향이보다 어리고 줄리엣보다도 적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다는 점이다. 애틋한 사랑에 가슴을 앓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살림을 차리러 짐을 싸들고 가출을 감행하는 것이다. 발칙해도 너무 발칙한 내용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슬그머니 미소 짓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영화 ‘문라이즈 킹덤(Moonrise Kingdom, 2012)’ 이야기다.
사고뭉치 샘은 또다시 양부모에게 버려질 위기에 놓여있고 친구라고는 라디오와 책, 고양이밖에 없는 외톨이 수지는 가족들에게서 벗어나고 싶던 차에 운명처럼 서로를 알게 되고 펜팔을 주고받으면 사랑(또는 우정)을 키워간다. 그리고는 결국 자신들만의 파라다이스를 찾아 떠나고야 만다. 마치 피비 케이츠 주연의 ‘파라다이스(Paradise, 1982)’ 같기도 하고 브룩 쉴즈 주연의 ‘블루 라군(The Blue Lagoon, 1980)’ 같기도 하다.
막장 드라마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은 두 남녀의 도피행각이라는 설정은 발칙하지만, 이 영화는 그보다 유쾌한 웃음이 더 어울리는 작품이다. 그 시절에 누구라도 한 번쯤 꿈꾸어 보았음 직한 내용들이 화면 가득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스카우트 대원인 샘은 스카우트에서 배운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서 자신들만의 안락한 거처를 마련하고 수지는 샘에게 편안한 휴식을 제공해 준다. 지상낙원이 완성된 셈이다.
두 아이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마치 신혼여행을 떠나온 신혼부부처럼 마음껏 자유를 누린다. 옷 젖을 걱정 없이 바당에 풍덩 빠지고 수지가 가져온 휴대용 레코드 플레이를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하며 짜릿한 첫 키스도 나눈다. 그러니 그 둘이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을 본 수지 아빠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래도 여전히 그들의 행각은 사랑스럽기만 하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두 남녀의 사랑 또는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첫째, 아들이 있다면 스카우트로 키워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고 둘째, 딸이 있다면 단속을 잘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될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부질없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형편상 스카우트는 결코 영화 같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두 아이들의 사례로 보면 스카우트는 절대적으로 돈 낭비 시간 낭비였다. 딸은 없어서 모르겠고…
뉴 펜잔스라는 작은 섬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사실 블록버스터급에 가깝다. 출연진들의 면면을 보면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가 보안관으로 나오고 ‘사랑의 블랙홀’의 빌 머레이가 수지의 아빠로 나오며 ‘본 레거시’의 에드워드 노튼이 스카우트 대장으로 나온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들은 결코 영웅이 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보통사람들일 뿐이다. 그런 모습이 다소 어색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신선한 것도 사실이다.
문라이즈 킹덤(Moonrise Kingdom, 2012)
드라마, 코미디, 모험 | 미국 | 94분 | 2013.01.31 개봉 | 감독 : 웨스 앤더슨
출연 : 브루스 윌리스(샤프 보안관), 빌 머레이(수지아빠), 에드워드 노튼(스카우트 대장), 프란시스 맥도맨드(수지엄마), 자레드 길만(샘), 카라 헤이워드(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