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다. 통속적이기는 해도 이 말이 시사하는 것은 보는 각도에 따라 사랑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둘이는 죽고 못살만큼 뜨거운 사랑이라 해도 남이 보기에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사랑이라는 감정은 제 삼자가 이해할래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전적으로 당사자들의 것이다.
여기 두 가지의 사랑이 있다. 하나는 범죄자와 술집작부의 사랑. 사람을 죽이고 경찰에 쫓기고 있는 사내는 머물지 않고 언제나 바람처럼 스치듯 왔다가 이내 다시 떠나가 버린다. 수배 중인 신세이기도 하지만 천성이 그래 보이기도 한다. 그런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는 언제나 고목처럼 그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바람이 불면 그 품에 안겼다가 떠나가면 다시 기약없는 기다림으로 남는다.
다른 하나는 술집작부와 애인 친구의 사랑. 사내가 바람처럼 떠다니는 데 비해서 갑자기 나타난 그의 친구는 그녀 곁에 한동안 머물며 조용히 마음을 흔든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했으나 언제부턴가 그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혼란에 빠진다. 애인에 대한 감정이 사랑인지 아니면 의리인지, 애인 친구에 대한 감정이 사랑인지 아니면 연민인지. 그녀는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애인의 친구인줄 알았던 그 남자가 사실은 경찰이었고, 애인을 검거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여자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자의 감정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이는 여자뿐만 아니라 그런 여자를 보고 있는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여자의 감정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다쳐도 남자의 감정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탓이다.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이제는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떼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배우 전도연 주연의 ‘무뢰한'(The Shameless, 2014)은 이처럼 사랑이라는 복잡미묘한 감정에 대해서 말하는 영화다. 사랑인듯 하면서도 사랑이 아닌듯한 관계.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느슨하고 사랑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치명적인 관계. 그러면서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이 영화를 선택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김해경 역의 전도연 때문일 수도 있고, 치명적인 느낌의 포스터 때문이거나 시간대 때문일 수도 있다. 내 경우에는 형사 정재곤 역을 맡은 김남길 때문이었다. 2008년작 ‘미인도’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였기에 그에 대한 기대도 컸었다. MBC드라마 ‘선덕여왕'(2009)의 비담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일약 스타로 발돋움했어도 요란스럽지 않은 연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후의 행보는 다소 실망스럽다. 군입대를 앞두고 시간에 쫓겨가며 찍었던 SBS드라마 ‘나쁜 남자'(2010)도 그렇고 군에서 제대한 후 첫 작품이었던 KBS2드라마 ‘상어'(2013)도 마찬가지다. 배역도 그렇고 분위기마저도 거의 자기 복제 수준이었다. 이 영화 역시 위의 두 드라마와 엇비슷한 배역과 분위기다. 연기 변신까지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아쉬움을 떨치기 힘들다. 작품 탓인지 배우 탓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영화에서의 시간은 상당히 더디게 흐른다. 준길(박성웅)에 대한 해경(전도연)의 미련한 감정이나 재곤(김남길)에 대한 치명적인 감정을 충분히 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 사이의 감정변화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서서히 물들어가는 감정이 아니라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되었으니 따지지 말고 보라는 식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느린 시간만큼이나 지루한 시간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결말 부분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토록 혜경에게 집착했던 재곤의 행동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갑작스러운 탓이다.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감정을 거부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마지막 부분은 치명적인 내용으로 일관하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떠올리게 만든다. 다만, 전도연이 무너지는 모습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무뢰한 (The Shameless, 2014)
멜로/로맨스, 드라마 | 한국 | 118분 | 2015.05.27 개봉 | 감독 : 오승욱
출연 : 전도연(김혜경), 김남길(정재곤), 박성웅(박준길), 곽도원(문기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