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후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몸은 마음을 대신하기 마련이다. 마음 있는 곳에 몸도 있다는 말도 그래서 가능하다. 연예인 지망생 여인과 하룻밤을 보낸 박시후는 “서로 호감을 갖고 마음을 나눴다”면서 절대로 강제적으로 벌어진 일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마음을 나누다 보면 몸도 나누게 되고 몸을 섞다 보면 마음도 섞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교적 자유로운 청년에 비해서 아무래도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는 중년은 어떨까? 그들에게도 몸이 마음이고 마음이 몸일 수 있을까? 영화 ‘불륜의 시대(From Seoul to Varanasi, 2011)’는 이처럼 몸과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몸을 섞으면서 마음을 나누기도 하지만 반대로 몸과 마음이 따로인 사이도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린 영화이기 때문이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영우(윤동환)는 작가 수연(신예안)과 농도 짙은 연애 중이지만 아내 지영(최원정)과의 사이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래도 굳이 관계를 나누자면 연인 사이인 영우와 수연이 몸을 섞으며 마음을 나누는 사이라면 부부 사이인 영우와 지영은 몸만 섞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지영의 인생에 어느 날 갑자기 케림(널래그 월쉬)이라는 외국인이 불쑥 끼어들면서 지영의 일상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제목이 ‘불륜의 시대’인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From Seoul to Varanasi’로 한글 제목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한글 제목과 영문 제목 둘 중의 하나에 오류가 있다는 말일 텐데 그 비밀은 케림과 우연히 만나 애틋한 감정을 키우게 된 지영이 그를 찾아 인도로 떠난다는 설정에서 찾을 수 있다. 남편의 외도를 알면서도 눈감아왔던 여인의 과감한 행로가 주된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보다 형이하학적인 부분에 더 집중한다. 영우와 수연의 정사 장면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면서 ‘불륜’이라는 주제를 부각시키고 싶은 듯하나 관객을 이해시키려 하기보다 그저 말초신경 자극에만 관심을 두다 보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그런 노출 장면이라면 돈 들여 시간 들여 극장에까지 찾아 가지 않아도 해결될 일이지 않던가.
결국,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영어 제목이 더 충실한 제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불륜의 시대’라는 한글 제목은 관객들을 낚기 위한 그저 낚시용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이 왜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사이가 되었는지, 그리고 영화는 왜 그들의 노골적인 성행위를 묘사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그저 그들은 원래 그런 사이이니 닥치고 그들의 벗은 육체나 보고 가라고 느껴질 정도다.
‘불륜의 시대’라는 제목처럼 이 시대에서 불륜은 결코 일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불륜이 무슨 자랑인 듯 과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저마다 말 못할 이유와 사정으로 불륜의 늪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불륜을 이야기하려거든 그 부분에 집중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삼류 포르노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이 영화의 예고편은 비교적 깔끔하게 만들어진 편이지만 본편은 상당히 난잡한 수준이다. 스토리도 없고 편집도 엉망이며 배우들의 연기도 엉성하기 그지없다. 사운드도 거지 같아서 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때도 종종 있다. 독립 영화의 열악한 현실이라는 변명을 늘어놓겠지만, 현실이야 어떻든 이런 수준의 영화라면 차라리 안 만드는 게 낫겠다 싶다. 20분짜리 단편영화라면 몰라도 98분짜리 장편영화라면 관객에게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륜의 시대(From Seoul to Varanasi, 2011)
멜로/애정/로맨스 | 한국 | 98분 | 2013.02.14 개봉 | 감독 : 전규환
출연 : 윤동환(영우), 최원정(지영), 널래그 월쉬(케림), 신예안(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