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경성스캔들’을 본 딸아이는 말한다. “엄마, 일본 사람들도 모두 조선말 쓰던데?” “아아, 그건 드라마고….” 21세기를 사는 한국인에게 모국어를 빼앗긴다는 것이 어떤 말인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 당연하다. 모국어로 말을 한다는 것은 숨구멍에서 숨이 들고 나는 것과 같다. 공기의 고마움은 공기가 사라질 때 비로소 각인된다.
이어령 선생님 인터뷰 갔다 들은 이야기 하나. 일제강점기 때 초등학교에서 한국말을 쓰면 바로 ‘후닥!(표 내!)’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담임선생이 자신의 도장이 찍힌 종이를 학생에게 10장씩 나눠 준다. 학생은 누가 조선말을 쓰면 ‘후닥!(표 내!)’이라고 소리친다. 일주일 뒤에 검사를 한다. 표를 제일 많이 가진 사람은 노트를 상으로 받고 표를 제일 많이 뺏긴 사람은 변소 청소를 했다. 아이들 사이에는 빼앗고 안 빼앗기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필사적인 언어전쟁이 벌어졌던 셈이다.
시골에서 온 어떤 아이는 조선말을 쓸까봐 처음부터 입을 다물어 버리다 벙어리처럼 되기도 했다. 어떤 아이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면 놀래 준다. ‘아이고머니나’ 하고 깜짝 놀라 소리치면 표 내놓으라고 한다. “아이고머니나가 왜 한국말이냐” “선생님에게 가 보자”라고 하면 일본인 교사는 “그건 한국말이다” 해서 표를 빼앗는다.
조선이 해방되었다는 얘기는 언어가 해방됐다는 뜻이다. 언어가 해방되었다는 얘기는 숨구멍이 열리듯 몸이 해방됐다는 뜻이다. 인격이 해방된 것이다. 더는 언어 빼앗기 놀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절, 자유롭게 모국어를 써도 되는 시절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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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살고 계십니까?
따사로운 햇빛이 화사하게 세상을 비춰주고 이따금 소나기가 대지를 적셔주며 시원한 바람이 이마의 땀방울을 식혀주기도 하고 하늘의 뭉개구름과 거리의 가로수들은 잠시동안의 그늘을 마련해 줍니다.
숨을 쉴 수 있는 이유는 공기가 있기 때문이고 갈증없이 살 수 있는 것은 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달이 뜨지요. 낮만 계속되거나 밤만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꼭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자연은 우리에게 베풀어 주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고맙기만 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생각하고 살때가 많지요. 공기도, 물도, 하늘의 해도, 달도 모두 원래 있던 것이기에 앞으로도 있어줄 것이라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 하나라도 잃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아끼며 보호해야 합니다.
말과 글도 다르지 않습니다. 매일 호흡하는 상쾌한 공기처럼, 때마다 마시는 시원한 물처럼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말과 글을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던 때가 있었지요. 그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공기가 없으면, 물이 없으면 생명은 살 수 없듯이 우리의 말과 글이 없으면 우리 민족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니 살아 있더라도 더 이상 우리민족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말과 우리의 글에 대해 감사하며 살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