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몸이 먼저일까 아니면 마음이 먼저일까. 사랑 없는 육체의 관계도 문제지만 관계없는 사랑도 정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본다면 풀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랑한다면 관계를 갖게 되고 관계를 갖게 된다면 더 깊은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기에 선후 관계를 밝히기가 명확하지 않은 탓이다.
미국의 인기 시트콤 ‘프렌즈'(Friends, 1994)에서 사랑스러운 여인 레이첼 역을 맡았고 지금은 안젤리나 졸리의 남편이 된 브레드 피트의 전처로도 유명한 제니퍼 애니스턴의 2008년 작 ‘러브 매니지먼트'(Management, 2008)는 그러한 문제를 과감하게 들이대는 영화다. 포스터의 홍보문구마저 ‘안 생긴다 포기 말고 과감히 터치하라’고 주장할 정도다.
애리조나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모텔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사실 모텔은 부모님 소유) 마이크(스티브 잔)는 어느 날 방문한 투숙객 수(제니퍼 애니스턴)의 뒷모습에 홀딱 반하고 만다. 그가 반했던 그녀의 뒷모습은 다름 아닌 엉덩이. 여지껏 그가 본 여인 중에서 가장 완벽한 엉덩이의 소유자였고 어떻게 해서든 그녀의 환심을 사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강렬한 충동이었다.
그의 작전은 밤마다 선물 공세를 펴는 것이었다. 첫날은 투숙을 환영한다며 포도주를 내밀었고 다음날은 이틀 연속으로 묵는 손님에게 드리는 혜택이라며 샴페인을 건넨다. 아무리 무심한 여자라 해도 이 정도면 상대 남자의 의도가 궁금하지 않을 터. 이러면 여자들이 넘어 오더냐며 직접적으로 묻는다. 그러면서 도대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게 섹스인지도 숨기지 않는다.
물론 마이크는 그런 걸 바란 것은 아니었다. 집과 모텔로만 이어져 있던 자신의 나른한 일상에서 모처럼 가슴 뛰는 상대를 찾은 것뿐이고 후회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 이상의 진전을 바라지도 않았거니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수가 그렇게 나오니 당황할 수밖에. 섹스가 아니면 엉덩이를 한 번 만져보는 정도냐는 수의 질문에 뭐 그 정도면 만족한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둘의 관계는 엉덩이에서 시작된다. 수는 포도주와 샴페인 공세를 퍼붓던 마이크에게 엉덩이를 만져보라며 내밀고 마이크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대시했던 자신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역시 미인은 용기있는 자만이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인. 어쩌면 수로서도 순박한 시골 청년의 바램이 섹스처럼 불온하지 않고 한낱 엉덩이에 불과했다는 부분에 안도한 것인지도 모른다. 섹스를 원했다면 거부했겠지만, 까짓것 엉덩이 정도 만지게 해주는 것 쯤이야라고나 할까.
마이크의 황당한 경험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출장 왔던 수가 돌아가는 길에 몰래 들러 세탁실에 있던 마이크를 덮치는 것이다. 그야말로 ‘덩쿨째 굴러 온 당신’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녀의 엉덩이를 만져본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데 그녀는 그 이상을 마이크에게 준 것이다. 수로서는 잠깐의 불장난에 불과했을지 몰라도 마이크는 죽어도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수는 떠나지만, 마이크는 그녀를 잊을 수가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마음으로 느끼기도 전에 몸이 먼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마음은 쉽게 잊혀지기도 하지만 몸은 그렇지 못하다. 반면 수는 다르다. 어차피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었고 잠깐 동안의 일탈에 불과했다. 수에게 있어 마이크는 잠깐 쉬어가는 벤치에 불과했던 것이다. 앉아있는 동안은 고맙지만 일어서고 나면 금세 잊혀지는 존재였던 것이다.
흔히 여자는 마음이 열려야 몸도 열린다고 한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자는 그와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연애 중인 남자가 여자에게 아이처럼 칭얼거리는 것도 대부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는 확신이 있어야 그럴 수 있다고 하고 남자는 그런 후에야 확신이 생긴다고 한다. 과연 사랑은 몸이 먼저일까, 마음이 먼저일까? 다만 이 영화는 컨츄리 음악을 듣는 재미는 쏠쏠했지만 영화의 전개가 상당히 억지스럽다는 점은 아쉽다.
러브 매니지먼트(Management, 2008)
코미디, 멜로/애정/로맨스 | 미국 | 93분 | 2009.12.31 개봉 | 감독 : 스티븐 벨버
출연 : 제니퍼 애니스톤(수), 스티브 잔(마이크), 우디 해럴슨(장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