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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

2014092199

영화가 시작된지 30여분도 지나지 않아서 이 영화의 수입배급사가 무삭제를 그토록 강조한 이유를 알것 같았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색, 계’는 예술영화였기 때문이다. 예술영화는 그리 대중적인 영화가 아니다. 관객들에게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튀는 문구가 필요했다. 나부터도 무삭제를 내세우지 않았다면 호기심도 없었을 것이고 영화에 대해 그리 큰 관심도 갖지 않았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두구나 요즘처럼 영화가 쏟아지는 시대에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자극이 필요했을 것이고 무삭제라는 선전문구는 충분히 자극적이라 할만했다.

물론 허위는 아니었다. 성적 표현에 대해서 관대하다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실제로 NC-17등급, 즉 미성년자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고 중국에서는 30여분 분량이 삭제되었기 때문에 무삭제라는 표현이 그 자체로서 의미가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말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무삭제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본질적인 부분이 가려졌다는데 있다. 이 영화가 파격적인 노출 정사신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그 부분이 핵심은 아니었다. 이 영화에서 정사신이 의미하는 것은 성에 대해 눈을 떠가며 성숙해가는 여인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뿐 결코 눈요깃감으로 치부되며 평가절하될 이유가 없었다. 여주인공 탕웨이도 내한 인터뷰에서 “정사신은 두 주인공의 감정의 발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들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몸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 감정은 사랑을 뛰어넘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대만 출신 미국 감독 이안은 예술을 만들었지만 영화를 수입배급한 수입사는 영화를 외설로 바꿔버렸다.

영화의 내용은 우리 입장에서는 지극히 평범하다. 나치에 대항하는 유럽의 레지스탕스 이야기와 달리 일제에 대항하는 저항세력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용만으로 본다면 큰 재미가 없기도 하다. 오히려 지루하고 졸립기까지 하다. 그럴수록 언제쯤 정사신이 나오나 혹시 파격적이라는 광고문구는 허위가 아니었나 하는 의심마저 들게 만드는 것이다.

무삭제라는 표현은 이 영화를 감상하는데 가장 치명적인 걸림돌이 되고 만다. 도대체 그 장면은 언제 나오는지를 기다리게 하기 때문이다. 영화 자체를 감상하기 보다는 호기심을 먼저 채우고 싶은 생각 때문이다. 정말 파격적인지 그렇게까지 심하게 노출하는지 음모는 보이는지 혹시나 성기가 노출되지는 않을지 등등의 생각들이 영화 시작부터 방해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게 다 무삭제라는 홍보문구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영화는 2시간 40분이나 상영되었고 첫번째 정사신은 한시간이나 지나서야 등장한다. 일제 앞잡이를 처단하자는 숭구한 정신은 경험없는 저항세력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들로 엉망이 되고 결국 탕웨이는 점차 여자로서의 욕정에 무너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만 그녀 자신도 인간이고 여자이기에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영화보다 전반 1시간 내내 정사장면만 기다리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나에게도 영화에게도 수입사에게도 그리고 홍보문구에게도 짜증이 동시에 몰려왔다. 도대체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는가. 게다가 서울시네마극장은 형편없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객석사이의 높낮이가 차이나지 않아 앞사람에게 방해받아야 했고 화질은 선명하지 못했으며 음향도 최악이었다. 21세기에 이런 극장이 아직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영화 시네마천국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영화감독이 되어 돌아온 토토에게 알베르토가 남겨준 필름을 감상하는 장면이었다. 검열에 의해 강제적으로 짤려나간 필름들만 모아서 토토를 위한 영화로 다시 만들어준 알베르토의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토토도 울고 관객도 벅찬 가슴에 콧끝이 아려옴을 느끼게 만든다. 무삭제라는 표현을 무책임하게 사용한 색계 수입배급사에게 유감을 넘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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