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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파는 파리 여대생들은… 엘르

엘르1

사랑 없는 섹스와 섹스 없는 사랑. 파리 여대생들의 성매매에 관한 영화 ‘엘르’는 이런 오래된 명제를 다시금 꺼내 든다. 그러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섹스 없는 사랑과 사랑 없는 섹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면 어떤 것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묻는다. 하지만 정말 그게 진심일까? 섹스 없이도 사랑할 수 있다거나 혹은 사랑 없이도 섹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인가?

이 영화는 세 명의 여자들을 등장시켜서 앞의 명제에 대해 풀어간다. 하나는 프랑스 유명 잡지 ‘엘르’ 매거진의 에디터 안느(줄리엣 비노쉬)이고 다른 하나는 보다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성매매 길로 들어선 여대생 룰라(아나이스 드무스티어)이며 마지막 하나는 폴란드에서 파리로 공부하러 왔지만 지낼 곳이 마땅치 않자 몸을 팔게 된 또 다른 여대생 알리샤(조안나 쿠릭)이다.

중년의 지적인 커리어 우먼 안나가 보기에 이 두 여대생은 정상이 아니다. 아무리 ‘엘르’ 매거진의 기획기사를 위해서 만난다지만 그녀들의 살아가는 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였다. 룰라는 멀쩡히 남자 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그러면서 콘돔도 사용하지 않는단다. 도대체 무얼 믿고 저렇게 함부로 몸을 굴릴까 싶다.

대낮에 공원에서 안나와 만나는 중에도 고객(?)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는 룰라의 얼굴은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안나가 보기에 룰라는 낯선 남자와의 잠자리를 즐기는 듯 보일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룰라에게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보다 남자와 몸을 섞는 것이 훨씬 쉬우면서도 벌이는 쏠쏠한 일이었다. 그녀는 섹스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섹스로 벌어들이는 돈에 중독된 것인지도 모른다. 룰라가 사랑 없이도 섹스하는 이유다.

그에 비하면 알리샤는 경우가 조금 다르다. 멀리 폴랜드에서 유학을 떠나왔지만, 설상가상으로 짐을 모두 잃어버렸고 가지고 있는 돈도 여유롭지 못했다. 어떻게 어떻게 하숙집을 찾아보기는 했으나 가슴부터 보여달라는 주인 남자의 요구에 뛰쳐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알리샤 혼자의 몸으로 살아가기에 파리는 그리 낭만적인 곳이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몸뚱아리로 돈을 벌어야만 했다. 알리샤가 몸을 팔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나는 서서히 그녀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녀들과 함께 웃고 또한 그녀들과 함께 울기도 하면서 그녀들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고 더불어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랑 없이 이루어지는 섹스가 역겹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차츰 섹스라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녀들과 달리 자신은 섹스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거였다.

영화는 다소 도발적이다. 룰라와 알리샤의 성생활을 묘사하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정사 장면들이 포함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낯뜨거운 장면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광화문 시네큐브 2관 객석 양쪽으로 낯선 여성들이 앉아 있었는데 혹시라도 나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키기라도 할까 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조금 야한 영화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진해도 너무 진했다.

그렇다고 삼류 영화처럼 난잡하지는 않다. 오히려 여대생들과의 매매춘을 장려하는 듯 보일 정도로 근사한 장면도 있었다. 특히 어느 노신사는 알리샤와 정사 후 알몸으로 기타를 연주하며 이브 몽땅의 ‘고엽(Les Feuilles Mortes, Autumn Leaves)’을 불러주는데 그 모습이 낯뜨겁거나 추하기는커녕 오히려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후반부에서 이 노신사는 안나의 잠재의식을 파고들기도 한다.

이 영화는 섹스 없는 사랑보다는 사랑 없는 섹스가 더 낫다고 말하는 듯하다. 불현듯 자신을 돌아본 안나가 자위에 몰두하게 되고 환상 속의 노신사가 불러주는 ‘고엽’을 들으며 묘한 흥분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일게다. 섹스 없는 인생은 그만큼 무미건조하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그게 이 영화의 결론인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다만 사람마다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기 마련이니 자신의 잣대에 따라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는 의미는 분명해 보인다.

엘르(Elles, 2011)
드라마 | 프랑스, 폴란드, 독일 | 96분 | 2012.10.11 개봉 | 감독 :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
출연 : 줄리엣 비노쉬(안느), 아나이스 드무스티어(롤라, 샤를로트), 조안나 쿠릭(알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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