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막연한 동경을 품기 마련이다. 아파트에 살다 보면 마당이 있는 집이 좋아 보이고 주택에 살다 보면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을 것만 같은 오피스텔이 편해 보인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자기가 이미 가진 것보다는 아직 가지지 못한 것을 더 갖고 싶어하는 게 사람의 욕심이다. 지극히 자연스럽지만 동시에 지극히 추잡한 감정인 것이다.
결혼 생활도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도 좋아 보이고 저런 모습도 좋아 보여서 결혼을 결심하게 되지만 실제로 같이 살아보니 이런 모습도 아쉽고 저런 모습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릴 때는 설레였는데 함께 지내다 보니 모든 게 지겹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누구 신랑은 어떻다더라 하면서 비교하게 되고 종내에는 우리 신랑은 왜 그 모양일까라며 한심한 생각까지 들게 된다.
하지만 과연 누가 변했는지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예전에는 멋있어 보였던 그가 결혼하고 나더니 돌변해서 갑자기 추한 인간이 된 것인지 아니면 예전에는 멋있게 봐주던 그녀가 결혼하고 나서는 더 이상 그를 애정어린 눈길로 봐주지 않는 것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지만 어쨌든 분명한 건 눈에 씌어있던 콩깍지가 벗겨졌다는 것이고 지금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도 눈에 들어온다는 점이다.
결혼 5년 차인 마고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요리작가인 신랑 루는 자상한 사람이었고 요리 솜씨도 일품이었다. 어찌 보면 최고의 신랑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고는 어딘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흔히 말하는 불꽃이라는 게 더 이상 타오르지 않는 탓이었다. 설레임을 느껴본 지도 오래이고 사랑받는다는 감정을 느껴본 지도 오래였다.
그런 그녀의 가슴을 파고드는 한 남자가 있었다.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대니얼이었다. 처음에는 시답잖은 감정이라고 무시했었는데 무엇인가가 자꾸 스멀스멀 피어오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남편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는 게 분명했다. 결혼하기 전 남편도 그랬었는지 이제는 생각나지도 않으나 어쨌든 지금의 남편과 비교해보면 훨씬 낭만적이고 재미있으며 근사한 사람이었다.
어느덧 마고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지난 5년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싶기도 하다. 남편은 오직 치킨 요리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좋은 사람일지언정 낭만하고는 담쌓은 남자였다. 게다가 한번 허물어지기 시작하니 주체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남편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고 다짐해 보지만 참는다고 참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꿈이든 현실이든 대니얼과 함께라면 언제나 행복할 것만 같다는 욕정에 흔들리고 있었다.
캐나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 2011)는 이렇듯 한 여인의 흔들리는 마음을 그린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누구도 그 여인의 선택을 탓하지는 못하리라. 결혼 전과 비교해서 달라지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그럴 바에야 차라리 헤어지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은가. 익숙해진 채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삶에 변화를 줄 것인지는 순전히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엄정화, 박용우 주연의 2007년 작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도 같은 화두를 던졌었다. 운명이라고 믿었던 상대가 사실은 운명이 아니었다고 느꼈을 때 어떡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패션 컨설턴트 유나(엄정화)는 호텔리어 민재(박용우)의 유머러스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지만 민재더러 다른 사람 앞에서 가볍게 행동하지 말고 거만스럽게 굴어보라며 잔소리를 하기 시작한 것은 젊은 사업가 영준(이동건)을 보고 나서다.
민재 또한 유나의 활발하고 적극적인 모습이 좋아 보였지만 더 이상 유나에게 설레이지 않게 된 것은 지적이고 차분한 조명 디자이너 소여(한채영)를 알고 나서부터였다. 영준 또한 조용한 성격의 소여 보다는 활동적인 유나가 더 매력적으로 여겨졌고 소여는 차갑고 냉정한 영준 보다는 부드럽고 재미있는 민재에게 더 끌렸다. 그런 상대를 결혼 후에야 만났다는 점은 서로에게 대단히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설레임이라는 감정은 언젠가는 멈춰지기 마련이다. 새로 산 신발도 언젠가는 닳게 될 것이고 새로 장만한 옷도 언젠가는 해지게 될 것이다. 사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감정은 점점 약해져 갈 것이고 운명이라고 믿어왔던 생각도 차츰 흐려져 갈 것이다. 그리고 설레임이 익숙함으로 변할 때 또다시 이런 의문이 생기게 될 것이다. 우리도 사랑일까?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 2011)
드라마 | 캐나다 | 116분 | 2012.09.27 개봉 | 감독 : 사라 폴리
출연 : 미쉘 윌리엄스(마르고), 세스 로건(루 루빈), 루크 커비(다니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