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최고의 감동이라는 표현은 새롭게 개봉하는 영화라면 어느 영화나 다 써먹는 문구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그런 문구에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을 지경이다. 영화를 보는 대중들의 평가가 아니라 어쩌면 영화사의 희망사항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2012)’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생애 최고의 감동이 찾아옵니다!’라는 표현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까닭에서다.
사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색다르게 만들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새롭게 창작하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원작과는 다르게 패러디도 해보고 결론을 뒤틀어보기도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기 마련이다. 흔히 ‘장발장’으로 알려져있는 ‘레미제라블’도 그런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뻔한 내용이라면 관객 입장에서 굳이 돈 들여 시간 들여 영화관을 찾을 이유가 없는 탓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정말 대단하다. 화려한 캐스팅과 거대한 스케일도 그렇지만 뻔한 내용으로도 관객들을 빨아들이는 몰입도가 그 어떤 영화보다 높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158분 내내 울고 웃었다고 한다면 알만하지 않은가. 게다가 낯설지 않은 멜로디들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코제트의 엄마 판틴 역을 맡은 앤 해서웨이가 부르는 ‘I Dreamed A Dream’에서는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레미제라블’은 특별하지 않은 영화다. 지난 1985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27년째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42개국 308개 도시에서 21개 국어로 공연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용인을 시작으로 대구, 부산을 거쳐 2013년 4월 서울에 입성했으니 어쩌면 뮤지컬 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데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이상이었다.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과 달리 영화는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고 있었다. 여기에 ‘엑스맨’의 휴 잭맨(장발장 역)과 ‘글라디에이터’의 러셀크로우(자베르 역),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판틴 역), ‘맘마미아’의 아만다 사이프리드(코제트 역)의 호연이 만나면서 뮤지컬을 뛰어넘는 이 시대 최고의 영화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특히 글라디에이터 이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러셀 크로우는 모처럼 자신의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어울리는 배역을 찾은 느낌이다. 낮게 깔리는 중저음이 장발장을 끈질지게 추격하는 자베르 형사에게 여간 잘 어울리는 게 아니었다. 또한, 그동안 수준 낮은 영화에만 출연했었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히로인 앤 해서웨이도 모처럼 열연을 펼치면서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씻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전편에 흐르는 주옥같은 노래들이다. 죄수들이 ‘Look Down’을 외치는 프롤로그부터 시작으로 약 20여 곡의 노래들이 쉴 새 없이 흐른다. 혹자는 이런 이유로 지루했다고도 하는데 단순한 드라마를 기대했었다면 충분히 실망할 수도 있는 일이다. 뮤지컬 버전은 2장의 CD에 각각 20곡씩 40곡인데 비해서 영화 OST는 단 20곡만 들어있기에 혁명 전야에 부르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과 같은 노래가 빠진 점은 아쉽다.
영화를 보고 나서 DVD로 뮤지컬 콘서트도 보고 다음 뮤직에서 뮤지컬 OST도 들어보았는데 결론은 뮤지컬보다 영화가 더 낫다였다. 이는 영화를 위해 모든 노래를 새롭게 편곡한 영향이 클 것이다. 뮤지컬이 비교적 가벼운 느낌인 데 비해서 영화는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특히 영화는 사상 최초로 스튜디오가 아닌 촬영현장에서 라이브로 녹음했다고 하는데 배우들의 노래도 뮤지컬 버전보다 듣기 좋았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2012)
드라마 | 영국 | 158분 | 2012.12.18 개봉 | 감독 : 톰 후퍼
출연 : 휴 잭맨(장발장), 앤 해서웨이(판틴), 러셀 크로우(자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