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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추리소설, 최후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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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종의 1974년 작 ‘최후의 증인’은 한국일보가 창간 2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시행한 장편소설 모집에 당선된 작품이다. 그와 더불어 문단 사상 일찍이 없었던 200만 원이라는 가장 큰 상금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소설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그 후 1년간 한국일보에 연재소설로 연재되면서 스토리의 흥미진진함과 비극에 대한 미학적 처리,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휴머니티로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단행본 초판은 1979년 동서문화사에서 동서미스터리북스(DMB) 시리즈의 300번째 책으로 펴냈었다.

‘최후의 증인’은 한국 추리문학의 대부로 추앙받는 김성종의 첫 번째 추리 소설이기도 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추리적인 수법을 사용함으로써 스토리 전체를 미궁과 흥미 속으로 몰아넣었던 작품이라 하겠다. 추리수법을 아직 손대는 사람이 없었고, 또 그러한 것이 별로 각광을 받지 못하는 마당에서 그는 확실히 성공적인 추리 솜씨를 보이고 있었다고 그의 오랜 교우이자 문화예술인인 백승철은 기록하고 있다.

김성종은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경찰관’이라는 작품으로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지만 본격적인 추리작가로서의 작품활동은 ‘최후의 증인’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20여 년 동안 40여 편, 권수로는 80여 권의 추리소설을 써왔으며 부산에 추리문학관을 만들어 한국 추리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기도 하다.

MBC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화제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1991)가 그의 작품이고 한국 드라마 사상 첫 추리극이라고 할 수 있는 ‘제5열'(1989) 역시 그의 작품이었다. 김성종이라는 이름에서 추리소설을 먼저 떠올리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은 1980년 이두용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하명중이 주인공 오병호 형사 역을 맡았었다. 그와 더불어서 최불암과 정윤희가 각각 황바우와 손지혜 역을 맡았고 강만호 역은 현길수가 그리고 양달수 역은 이대근이 맡았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딱 맞아떨어지는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화는 흥행에서 참패하고 만다.

이에 대해 주연을 맡았던 하명중은 한국일보 ‘보석 같은 한국영화’라는 칼럼을 통해서 “영화가 완성되고 극장에 걸렸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에 대하여 누구도 박수를 보내지 않았다. 극장에서 1주일 만에 간판이 내려지고 영화제에서도 ‘팽’ 당했다. 제작자는 수많은 돈을 날렸다. 모두 고개를 떨구었다. 허망했다. 그리고 30년 세월이 지났다. 어느 날 갑자기 ‘최후의 증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젊은 영화감독들이 ‘보석 같은 한국영화’라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영상자료원에서, 영화제에서 ‘최후의 증인’의 재상영이 시작됐다.”(2009.4.20. 한국일보) 라며 아쉬워하고 있다.

또한, 씨네21 편집장 남동철은 “1980년 개봉 당시 검열로 만신창이가 됐던 영화다. 2시간 30분이 넘는 영화를 1시간 40분으로 1시간가량 잘라내고 개봉했으니 당대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을 리 만무하다. 다행히 감독판이 남아 있어 그걸 본 몇몇 사람이 입소문을 냈고 20년 넘는 세월이 흐른 뒤 우리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체 어떤 영화기에 전설이 됐을까 너무나 궁금했다. 보고나니 저주받은 걸작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2008.1.25. 씨네21)라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최후의 증인’은 2001년 이장호 감독에 의해 ‘흑수선’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만들어지지만 역시 흥행에 실패하고 만다. 이때 오형사 역은 이정재가 맡았고 황바우 역은 안성기, 손지혜 역은 이미연, 양달수 역은 이기영, 한동주 역은 정준호가 각각 맡았었지만 원작과는 괴리감이 큰 캐스팅이었고 오히려 1980년 작보다 못한 졸작으로 머물고 말았다.

소설 ‘최후의 증인’은 한국 근현대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소설이다. 좌우의 이념에 따라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가 전쟁이라는 커다란 비극을 맞이하면서 수많은 비극을 감수해야 했던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고 펼쳐 들었다가 책을 덮을 즈음에는 막막함에 눈시울이 붉어지게 될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에는 전후 세대가 느끼지 못했던 감동과 휴머니티로 가득하다.

시작은 무기수로 억울하게 옥살이하다 20년 만에 출옥하는 노인네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과 그를 풀어헤쳐 가는 민완형사의 활약으로 이어지는데 6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속도가 빠르고 내용도 치밀했다. 마치 실제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간다. 이 작품의 배경이 1972년부터 74년 사이이고 이 작품에서 다루는 사건이 하나는 1952년에 벌어졌고 다른 하나(또는 둘)는 1973년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20년 전의 시간적 공백을 메우는 일은 필연적이었다. 작가는 그 속을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는데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비운의 주인공들이다. 순박하기만 했던 황바우는 영문도 모르는 살인자가 되어 20년을 형무소에서 썩어야 했고 혁명을 꿈꾸던 엘리트 혁명가의 딸이었던 손지혜는 하루아침에 공비들의 성 노리개가 된 것도 모자라 그를 지켜주던 황바우마저 잃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을 파헤쳐 황바우의 누명을 벗겨주리라 다짐했던 오병호 형사는 황바우와 손지혜의 죽음에 대한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전쟁이 없었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들이었던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라고 할 수 있는 그 당시 형사 오병호는 순전히 온몸으로 부딪혀서 수사를 진행했는데 이러한 내용은 첨단기기와 함께하는 과학수사(CSI)에 익숙한 세대들에게는 오히려 신선한 재미로 다가오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클릭 한 번이나 전화 한 통이면 알 수 있는 내용들도 이 소설에서는 오랜 인내심의 결실로 나타나곤 한다. 빠른 것에만 익숙해져 있는 이 시대에 느림의 미학을 가르쳐주는 소설이라 하겠다.

이 책은 현재 절판된 상태로 시중에서 구입할 수가 없다. 종로도서관에서 1979년에 펴낸 동서미스터리북스판을 찾을 수 있었는데 돈을 주고도 구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서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1980년에 제작된 이두용 감독의 영화까지 보고 싶었지만 보고 싶어도 볼 수도 없는 현실이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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