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지금까지와의 모습과 작별을 고하는 일이다.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을뿐더러 웬만한 일들은 혼자서 결정하지 못하고 배우자와 상의해서 처리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양보의 양보를 거듭해야 하고 결국에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익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길들여져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결혼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사랑스러운 약혼녀 이네즈(레이첼 맥아덤스)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작가 길(오웬 윌슨)도 다르지 않다. 큰마음 먹고 영화 작가의 생활을 접고 본격적인 소설가가 되려고 하지만 거주지부터 문제에 부딪히고 말았다. 모처럼 방문한 파리에 온 마음을 빼앗긴 통에 파리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이네즈의 생각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선택의 갈림길에 서고 말았다. 결혼을 선택하고 파리를 떠날 것인가 결혼을 포기하고 파리에 남을 것인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2011)’는 그렇게 파리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다. 에펠탑이 있고 몽마르뜨 언덕이 있으며 센강이 흐르는 낭만의 도시, 파리. 누군들 그곳에서 살고 싶지 않으랴. 하지만 파리에서 파리지앵으로 살아가고 싶어도 높은 물가와 지독한 교통정체에 숨이 막히기도 한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라고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의 도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처절한 삶의 공간인 탓이다.
길에게 있어 파리는 걸어도 걸어도 지치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도시였다. 그런 파리의 매력을 깨닫지 못하는 이네즈가 못내 야속할 수밖에 없다. 파리에서라면 창작의욕이 샘물처럼 솟아나 늘 베스트셀러만 낼 수 있을 듯도 하지만 이네즈는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는다. 파리를 떠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길에게 있어 모든 걸 포기하라는 의미와 같다. 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는 길을 잃고 파리의 밤길을 헤매다 우연히 1920년대 과거로 돌아가는 차를 얻어탄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오프닝에서 보여주듯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를 소개(또는 홍보)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파리의 모습이 멋들어지게 그려져 있다. 에펠탑의 모습과 개선문 그리고 센강과 몽마르뜨의 연인들뿐만 아니라 비 오는 파리의 모습도 그렇게 낭만적일 수 없다. 오프닝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떨리도록 만드는 영화다.
또한, 그러한 장면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주는 배경음악이 합쳐지면서 보는 일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기도 한다. 파리를 다녀왔건 그렇지 않건 파리로 다시 달려가고 싶어 미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곳에서 밤길을 걷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처럼 과거로 향하는 자동차를 얻어탈 수 있을 것만 같고 책에서만 보아왔던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다. 파리로 떠난다고 영화처럼 낭만적인 1920년대로 데려다 줄 클래식카가 기다리고 있을 리 만무하거니와 유명 예술가를 만난다고 이 영화에서처럼 감동을 받을 수 있을런지도 의문이다. 영화 에세이스트 김세윤 작가에 따르면 이 영화에 나오는 예술가들을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느끼는 재미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래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로맨틱 코미디 쟝르인 이 영화는 다분히 판타지스럽다. 시간여행을 통해 유명인들을 만나게 된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비 내리는 파리를 걷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꿈에서 확 깨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오래도록 빠져있던 꿈에서 돌아오는 시간이다. 서울에서 비가 내리면 피하기 바빴는데 파리에서라면 주인공처럼 내리는 비를 피하지 않고 하염없이 맞으며 걷고 싶어진다. 파리로 달려가고 싶어 미치게 되는 이유다.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2011)
코미디, 멜로/애정/로맨스, 판타지미국, 스페인94분 2012.07.05 개봉, 감독 : 우디 앨런
주연 : 오웬 윌슨(길), 마리옹 꼬띠아르 (아드리아나), 레이첼 맥아담스(이네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