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도둑들’ 때문이다. 최근 들어 갑자기 한국영화 특징으로 떠오른 사항 중의 하나는 제목을 함부로 짓는다는 점인데 그 시작이 바로 ‘도둑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가 심해지다 보니 가끔 보면 무성의하다 싶을 때도 있다. 김명민 주연의 ‘간첩’이나 임창정 주연의 ‘공모자들’도 그렇다. 이번 주 개봉 예정인 소지섭 주연의 ‘회사원’도 다르지 않다. 제작사에서 작품 제목에 대한 고민은 일찌감치 접은 듯 보일 정도다.
하지만 어쩌면 어설픈 제목보다는 그게 더 나은 선택일는지도 모른다. 차태현 주연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잔뜩 멋만 부려봤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 ‘도둑들’이라는 제목 외에 다른 제목을 붙였다면 대중들에게 오히려 신파적으로 보였을 게 분명하다. 정말 잘 만들어진 제목은 작품을 빛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오히려 작품을 갉아먹을 수도 있는 탓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점을 고려한다 해도 ‘점쟁이들’은 너무 했다. 제목 그 어디에서도 센스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에서다. ‘도둑들’의 경우 그런 직접적인 제목을 처음 시도했다는 점에서 차라리 신선하기라도 했으나 ‘간첩’에서 이미 식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점쟁이들’에 이르러서는 피곤함마저 생기고야 말았다. 무슨 제목을 저따위로 불성실하게 짓느냐는 생각에서다.
점쟁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작품 중에 2009년 작 ‘청담보살’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청담동에서 활동하는 처녀 점쟁이와 백수에 관한 이야기였고 나름대로 재미있었던 코미디 영화였다. 그럼 ‘점쟁이들’이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어떤가? 복수형이니 ‘도둑들’처럼 여러 명의 점쟁이가 등장할 것이고 김수로가 주연을 맡았으니 코미디일 게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사이비 역술인들이 펼치는 황당무계한 내용쯤으로 기대되지 않는가.
‘도둑들’은 촌스러워 보이는 제목과 달리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고 있었다.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김수현 등 그야말로 초호화 캐스팅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여기에 홍콩 배우 임달화까지 가세하고 있었다. 이들이 등장하는 영화의 제목이 고작 ‘도둑들’이라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반면 ‘점쟁이들’의 출연진은 제목만큼 B급 냄새가 풀풀 날린다. 영화 ‘건축학개론’과 SBS 드라마 ‘패션왕’의 히어로 이제훈만 제외하면 김수로, 강예원, 곽도원, 김윤혜 등 영화에서 중심을 잡고 이끌어갈 만한 인물은 보이질 않는다. 제목도 비호감인데다가 출연진마저 확실하게 땡기는 인사가 없는 셈이다. 이 영화를 예매하면서 찜찜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도 재미만 있다면야 용서될 일이 아니던가. ‘도둑들’도 그랬으니 ‘점쟁이들’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을쏘냐. 하지만 그러한 기대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재미도 없을뿐더러 웃기지도 않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코미디이니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점쟁이들이 모였다는 설정은 이해해 줄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이후의 전개는 전혀 코미디스럽지 않았을뿐더러 억지로만 일관하고 있었다.
게다가 더 어이없는 것은 이 영화의 쟝르에 대해서 나름대로 공포영화를 주장한다는 점이었다. 이 영화는 전국 제일의 점쟁이들이 울진리에 모여 힘을 모아 악령을 퇴치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코미디 영화이지만 웃기지 않았고 공포 영화라지만 무섭지 않은 이도 저도 아닌 채 시간만 낭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유치하기만한 이 영화는 10월 3일에 개봉한 이래 10월 7일까지 무려 61만 관객이나 불러들였는데 이게 다 ‘도둑들’ 때문이 아니고 뭐겠는가…
점쟁이들(Ghost Sweepers, 2012)
코미디, 공포 | 한국 | 119분 | 2012.10.03 개봉 | 감독 : 신정원
출연 : 김수로(박선생), 강예원(찬영), 이제훈(석현), 곽도원(심인 스님), 김윤혜(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