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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재미있지만 위험한 상상력의 광해 - Journeyman이 바라본 세상
재미있지만 위험한 상상력의 광해

광해1

연산군은 난폭한 폭정을 일삼았던 대표적인 폭군의 대명사다. 로마로 치면 네로 황제 정도로 비유할 수 있겠다. 1494년 12월 성종의 승하와 함께 왕위에 오른 연산군은 재위기간 12년 동안 하도 무도한 짓을 많이 저질러 임금으로서의 시호도 받지 못하고 왕자로 강등되는 비운(?)의 인물이었다. 그가 재위기간 쓰여진 기록 역시 실록이 되지 못하고 일기(연산군일기)로만 남을 뿐이다.

연산군과 같은 운명의 임금은 또 있다. 바로 광해군(1575~1641)이다. 연산군과 더불어서 시호를 받지 못한 단 두 명의 임금 가운데 하나로 인조반정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난 인물이었다. 어린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뜨거운 방에 가두어 잔인하게 죽이고 선왕의 부인(대비)이자 국모였던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면서 연산군 못지않은 폭군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광해군은 연산군과 달리 재평가 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 연산군이 자신의 향락을 위하여 횡포를 저질렀다면 광해군은 백성들의 공납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대동법을 시행했다는 점과 국가의 안위를 위하여 맹목적으로 명나라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국제정세를 냉철히 파악해서 신흥 세력인 후금(청나라)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이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2012년 9월 13일에 개봉한 영화 광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난폭한 광해군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고심하는 선군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영화가 돌풍을 일으키자 조선일보 이한우 기획취재부장은 ‘광해군을 미화해선 안 되는 이유’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고 ‘영화 속 광해와 실제 광해 차이’를 통해서 역사와 허구를 비교하는 글이 실리기도 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개봉 4주차인 10월 9일 현재 누적관객수 840만명을 돌파한 상태다.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인물은 크게 세 명이다. 하나는 광해군(이병헌)이고 다른 하나는 임금의 비서인 도승지 허균(류승용)이며 다른 하나는 왕과 닮은 외모의 저잣거리 광대 하선(이병헌)이다. 광해군이 자신을 닮은 인물을 찾아오라고 은밀한 명을 내리는 것은 정적에 의해 암살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즉 허수아비를 앉혀놓고 자신은 그러한 위험에서 피해있겠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왕자와 거지’라는 마크 트웨인의 동화를 연상시키는 내용인데다가 이 영화보다 한 달 먼저 개봉했던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 이미 다루었던 소재였기에 신선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작으로 떠오른 ‘도둑들’에 이어 다시 한번 천만 관객을 바라보는 영화로 주목받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월드스타로 자리 잡아가고 는 이병헌이 있다.

이 영화에서 이병헌은 1인 2역을 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둘의 만남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두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듯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영화에 대한 찬사보다 이병헌에 대한 찬사가 더 많은 것도 그 때문일게다. 야구인 출신의 방송인 강병규와의 소송 등 여러 가지 사건(?)으로 그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못하다 해도 이 영화에서 보여준 이병헌의 연기는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역사와 허구를 과감하게 넘나든다.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광해군 시대에 대한 일반인들의 역사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그렇다고 하면 그대로 믿을 판이다. 감독이 광해군을 폭군으로 그렸다면 폭군으로 믿을 수밖에 없고 선군으로 그렸다면 또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 셈이다. 재미는 있지만,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광해군에 대한 논란도 거기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를 보면 광해군보다는 그가 몸져누웠을 때 그 역할을 대신했던 하선에게 더 정감이 가게 마련이다. 권위적인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생각하는 진솔한 임금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당파 사이에서 대동법의 시행을 결정하는 것도 하선이고 명의 요청으로 군사를 파병할 때에도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하선이다. 차라리 하선이 왕이었다면 그 이후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영화처럼 상상일 뿐이지만.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드라마 | 한국 | 131분 | 2012.09.13 개봉 | 감독 : 추창민
출연 : 이병헌(광해/하선), 류승룡(허균), 한효주(중전), 김인권(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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