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나이 들면서까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온갖 세파에 시달리면서 볼 꼴 못볼 꼴 다 경험하다 보니 더 독해져야 살아남겠다는 결론만 남은 탓이다. 양보하고 착한 척 해봐야 손해 보는 건 자신뿐이다. 하나라도 더 갖기위해 떼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오늘도 아웅다웅하며 살게 만드는 것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 동화책을 펼쳐본 적이 있는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형식 말고 어릴 적 보았던 ‘신데렐라’나 ‘헨젤과 그레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또는 ‘인어공주’와 같은 동화 말이다. 외국 동화 말고 전래동화인 ‘흥부-놀부’나 ‘콩쥐-팥쥐’도 있겠다. 아마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니고서는 동화를 펼쳐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아이들만 읽는 책이라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결정적으로 재미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런 동화를 받아들이기에는 자기 자신이 더 이상 순수하지 않다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그야말로 동화 같은 결말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배신감도 있겠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순수한 동화보다는 현실을 리얼하게 반영한 잔혹 동화가 더 현실적이라고 믿게 된다. 개콘 ‘사마귀 유치원’의 쌍칼 아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더 재미있게 들리는 것도 그래서일게다.
지난주 개봉한 영화 ‘백설공주(Mirror, Mirror, 2012)’는 동화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백설공주’라는 너무 뻔한 이야기를 21세기에 다시 만들었다면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19세기 그림형제 동화집(Schneewittchen, 1812~1857)에 처음 등장했을 때나 20세기(1937년) 월트 디즈니에 의해 애니메이션(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으로 재탄생했을 때와 비교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설공주’는 그렇지가 못했다. 고전을 비틀지도 못했고 신선함을 가미하지도 못했다. 동화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다 보니 새롭지도 못하고 참신하지도 못한 어정쩡한 영화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온갖 패러디를 갖다 붙였던 ‘슈렉’과 비교하면 그 아쉬움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폭소가 터질 정도로 코믹 요소가 강한 것도 아니다.
물론 왕비와 백설공주가 이웃나라 왕자 때문에 대립한다는 점은 재미있는 설정이다. 그로 인해 이 영화가 백설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왕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도 신선한 면은 있다. 또한 일곱 난장이의 비밀 병기나 그들의 숙소도 볼만하고 백설공주가 무사로 훈련받는 모습도 봐줄 만 하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너무 정직한 영화라는데 문제가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하다고 말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이 영화의 관람등급은 전체 관람가다.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아이와 함께 보기에는 차라리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더 낫고 연인과 함께 보기에는 잔혹 동화가 더 낫겠다. 그만큼 밍밍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중간중간 코믹적인 내용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유치하고 지루한 영화다. 이는 앞에서 얘기한대로 새로울 것도 없고 신선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알려진 잔혹 동화에 따르면 백설공주와 계모인 왕비는 왕을 두고 벌이는 연적 사이라고 한다. 또한 숲 속의 일곱난장이와 지낼 때와 독사과를 먹고 깊은 잠에 들었을 때 모두 차마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기도 하다. 그런 내용이라면 혹해서 볼만하기도 하겠지만 이런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에는 세상에 너무 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개콘 ‘사마귀 유치원’의 쌍칼 표현대로 한다면 “백설공주의 얼굴이 이뻐~ 아주 내 스타일이야~”다.
백설공주(Mirror, Mirror, 2012)
드라마, 판타지, 코미디 | 미국 | 108분 | 개봉 2012.05.03 | 감독 : 타셈 싱
주연 : 줄리아 로버츠(왕비), 릴리 콜린스(백설공주), 아미 해머(왕자, 프린스 앤드류 알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