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의 짐을 지고 살기 마련이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준다고도 하지만 가끔은 너무 무겁고 힘겨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유로워지고 싶을 때도 있다. 나풀거리는 나비처럼 허공을 가르는 새처럼 현실에서 벗어나 그저 멀리로 떠나고만 싶어지기도 한다.
저마다 짐을 지고 살지만 유독 내 짐만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신에게서 버림받았거나 혹은 저주받은 인생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옆에서 힘이 되어줄 누구라도 있어주면 좋으련만 오롯이 혼자라는 생각이 더욱 외롭고 고독하게 만든다. 혼자서는 더 이상 살아갈 힘조차 남아있지 않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핀란드 영화 ‘야곱 신부의 편지(Postia Pappi Jaakobille, Letters To Father Jacob, 2009)’의 여주인공 레이라(카리나 하자드)도 그랬다. 살인죄로 무기수가 된 그녀는 어려서부터 친모에게 폭행을 당했고 자라서는 남편에게 폭행당하는 언니의 처지를 보다못해 형부를 살인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언니를 위한 일이 결국 언니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이 그녀를 짓누르곤 했다.
이 영화는 그런 레이라가 야곱신부를 통해서 치유받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레이라의 마음은 강퍅했지만 야곱신부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이 땅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그녀에게도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야곱신부의 편지’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야곱신부(헤이키 노우시아이넨)다. 그는 늙고 앞도 보이지 않지만 상처받은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겨 매일같이 편지를 기다리며 답장한다. 레이라의 역할이 바로 야곱신부에게 편지를 읽어주고 야곱신부가 불러주는 대로 적어서 답장을 보내주는 일이었다.
그녀는 이러한 행위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지를 못했다. 어려움이 있다면 다른 해결방안을 찾아 뛰어다녀야지 고작 편지 한 장 달랑 보내서 기도를 요청한다고 해결되겠느냐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그중에서는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편지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기도가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비로소 야곱신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이 영화는 지극히 신파적이다. 그리고 레이라의 눈물을 보며 잠깐이라도 훌쩍이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명 최루성 영화이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 힘겹던 자신의 일상이 조금은 가벼워 보이는 기적 아닌 기적을 맛보게 될 것이다. 재미있느냐고 묻는다면 재미없는 영화라고 답해야겠지만 이 영화는 재미로 보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야곱신부의 편지’는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한 영화다. 단편영화처럼 스토리는 단조롭고 상영시간(75분)도 짧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의 울림은 그 어떤 영화보다 더 큰 것도 그래서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노래가 생각나는 영화이기에 버티기 힘들던 사람에게는 버틸 힘이 되어 주고 살아갈 힘이 없던 사람에게는 살아갈 힘을 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야곱신부의 편지(Postia Pappi Jaakobille, Letters To Father Jacob, 2009)
드라마 | 핀란드 | 74분 | 개봉 2012.05.10 | 감독 : 클라우스 해로
주연 : 카리나 하자드(레이라), 헤이키 노우시아이넨(야곱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