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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원한 처녀 은교

은교

아무리 육체적 관계가 없었다고 해도 나이 많은 남자와 여고생과의 만남을 정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쉽지 않을게다. 당사자들은 정신적인 사랑, 즉 플라토닉 러브라고 강변할지라도 그 둘의 관계를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결코 순수해 보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정신적 사랑이라는 ‘선’이라는 게 영원히 지켜질런지도 알 수 없거니와 언제 돌변하게 될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영화 ‘은교’는 막장에 가깝다. 여고생을 향한 노인네의 연모의 정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유에서다. 예고편에서 흐르던 “세상 사람들은 칠십 노인하고 여고생 관계, 그걸 사랑이라고 하지 않아요. 그건 더러운 스캔들이라구요”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할 수 있다. 그런 은밀하고 충격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영화화 될 리도 없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이 영화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집중 조명을 받았는데 하나는 30대 중반의 박해일이 70대 노인 역을 맡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고은이라는 여배우가 데뷔작에서 발가벗은 전라의 연기를 펼쳤다는 점이다. 원작을 읽고 영화까지 본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대부분 위의 두 가지 이유 중의 하나로 영화를 선택했을 것이다. 물론 둘 다일 수도 있겠고.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식으로 홍보하면 안 되는 영화였다. ‘성애’나 ‘정사’와 같은 노골적인 표현 대신 ‘시인과 제자, 열일곱 소녀 서로를 탐하다’처럼 점잖은 문구를 써놓았지만 앞에서 말한 예고편에는 늙은 노시인과 새파란 여고생과의 불륜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대사가 포함되어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영화의 감상포인트를 엉뚱한 곳으로 돌려놓는 우를 범하고야 말았다.

그런 이유로 원작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원작과는 다른 전개로 황당하게 만들고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홍보와는 다른 전개로 당황하게 만든다. 원작을 아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원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원작을 훼손한 영화가 되고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지루하기만 한 영화가 되는 것이다. 둘 중의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했으니 영화에 대한 시선이 고을리 없다.

원작을 떠나서 이 영화의 아쉬움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은교에 대한 노작가의 시선이 제대로 그려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적요 시인이 열일곱짜리 여고생에게 빠지는 것은 노망이 났다거나 그 마음이 음탕해서가 아니다. 은교를 통해서 잊고 살아왔던 소시적의 그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칠십대의 나이지만 은교로 인해 십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기에 은교와의 질탕하게 성애를 나누는 상상도 가능했던 것이다.

즉, 이적요 시인에게 은교는 젊은 날의 기억인 셈이다. 그녀를 발가벗기고 육체를 탐할 생각도 없거니와 이미 쇠약해 버린 육체가 감당하지도 못한다. 그러한 사실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자신의 물건을 내려다보는 첫장면에서 분명히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마음속에 음탕한 생각을 품은 그 자체가 강간이라는 성경의 한 구절처럼 그를 정죄한다면 분명 유죄라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정말 그를 향해 유죄라고 외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두 번째로 아쉬운 점은 ‘불륜’이라는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점이다. 어디에서도 불륜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많은 관객들에게 그런 상황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양조위와 탕웨이가 주연을 맡았던 ‘색, 계'(2007)처럼 언제쯤 농도 짙은 정사장면이 언제쯤 펼쳐질까 기다리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이는 영화를 더욱 지루하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되기도 했다.

사실 뒷부분의 정사장면은 ‘색, 계’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찐하다. 그리고 상당히 자극적이다. 그로 인해 이야기 전개가 급물살을 타게 되니 쓸데없이 관객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위한 목적으로 삽입한 장면은 아니라고 아해해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이었다면 오히려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테지만 이 영화에서 정사장면은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주는 데 실패하고 만다. 홍보가 영화를 그렇게 몰고 간 탓이다.

영화 ‘은교’는 박범신의 원작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나면 원작이 왜 화제가 되었었는지 알 수 있어야할텐데 그렇지가 못하다. 오히려 영화가 끝난 후 “이게 뭐야?”라고 하는 의견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원작을 읽어보도록 하자. 소설에는 영화가 주지 못한 감동과 재미가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소설을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 영화는 재미도 없거니와 매력적이지도 못하다.

은교(2012)
멜로/애정/로맨스 | 한국 | 129분 | 개봉 2012.04.25 | 감독 : 정지우
주연 : 박해일(이적요), 김무열(서지우), 김고은(한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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