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늘 어렵다. 하나를 두고도 선택하기 어려운 지경인데 하물며 둘 이상이라면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영화 ‘헝거게임’은 그런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는 영화다. 2012년 4월 5일 개봉한 이 영화를 볼 것인가 말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원작소설을 먼저 볼 것인가 아니면 영화부터 볼 것인가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서 기대치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지나치게 화려한 수식어들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각 인터넷 서점에서는 원작소설에 대해 끊임없이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화 포스터에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 압도적 1위!’라는 문구까지 박아놓았다. 도대체 어떤 내용인가 궁금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요란한 빈 수레’를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기로 결심한 것은 공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던 이유에서다. 어느 전자책 서점에서 실시한 행사에는 5천원을 캐시로 충전하면 영화 ‘헝거게임’의 예매권을 무료로 증정하고 있었다. 내 돈을 내가면서까지 일부러 찾아볼 생각은 없었지만 어쨌든 이런 식으로라도 보게 된다면 굳이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한국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원플러스원(1+1)이 아니던가.
영화는 비교적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곳곳에 숨은 유머가 나름대로 웃기기도 했다. 어떻게 저런 상상력을 발휘해서 소설로 쓰고 영화로까지 만들었을까 감탄할만한 대목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지 재미없다는 점이었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 컴퓨터 게임 즐기는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될 만큼 내용도 없었고 스릴도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걸까?
첫째, ‘헝거게임’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헝거게임이란 피지배층의 반역을 방지하기 위해 각 지역별로 2명씩, 모두 24명의 젊은이로 하여금 서로 죽이도록 만드는 일종의 생존게임인데 그게 왜 이름이 ‘헝거게임’인지 아리송하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퀴디치(Quidditch)’처럼 차라리 모르는 단어이거나 전혀 새롭게 만들어낸 말이었다면 모르되 ‘hunger’라는 단어는 중학교 2학년도 아는 ‘배고픔, 굶주림, 기아’를 의미하는 단어다. 당연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둘째, ‘헝거게임’은 생존게임인가 술래잡기인가?
이 영화는 24명의 살육전쟁을 주된 소재로 한다. 여동생이 ‘헝거게임’ 참가자로 결정되자 언니 캣니스가 자원한다는 눈물겨운 부분도 있지만 쫓고 쫓기는 24명의 상호작용이 이 영화를 지탱하는 줄기인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헝거게임’은 그저 술래잡기로만 보일 뿐이다. 살고 싶다는 간절함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절박함도 없다. 그러면서 무슨 생존게임이라는 건지.
셋째, 생존게임에서 살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주인공?
생존게임은 기본적으로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만 하는 비정한 게임이다. 그것은 재미로 목숨을 노리는 인간사냥하고는 다르다. ‘헝거게임’이 인간사냥이 아니라 생존게임인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인공 캣니스는 아무도 죽일 필요가 없다. 누군가 대신 죽여주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마지막 경쟁자로 남아서 반드시 죽여야할 상황에 이를지도 모를 가녀린 어린 소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알아서 죽여주니 손에 피 묻힐 필요가 없다.
넷째, 영화를 보기 전에 반드시 원작부터 보라고?
위에서 제기한 모든 것들은 기본적으로 원작에 대한 이해력 부재에서 온다. 영화는 서론 없이 ‘헝거게임’이라는 본론에만 치중하고 있는 까닭에서다. 이미 원작을 아는 사람들은 재미있다며 침을 튀기며 칭찬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영화 ‘다빈치 코드’를 보기 위해서 소설 ‘다빈치 코드’를 꼭 읽어야만 하는가? 영화 ‘완득이’를 보려면 소설 ‘완득이’를 먼저 봐야만 하는가? 이 영화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했었는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영화의 포스터 상단에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 압도적 1위!’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쓰여있다. 이는 분명 허위가 아닐지도 모른다. 2012년 12주차부터 13주차까지 2주 연속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2주차 실적으로는 ‘토이스토리3’에 이어 역대 8위에 해당하는 성적이기도 하다. 포스터에 써있는대로 전 세계까지는 아니더래도 일단 북미에서의 열풍은 인정해줄 만 하다.
그럼 지난주에 개봉된 한국에서의 성적은 어떨까? 개봉일이었던 4월 5일 관객수는 39,016명으로 전체 2위의 흥행성적이었으나 ‘건축학개론’의 67,576명의 반정도 밖에 되지 않는 저조한 수치였다. 이는 주말에도 바뀌지 않았다. 금요일인 6일부터 일요일인 8일까지 ‘건축학개론’이 454,428명을 동원한데 비해 ‘헝거게임’은 273,796명에 머물렀다. 그나마도 나처럼 초대권이 적지 않았으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굴욕적인 상황이 아닌가.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The Hunger Games, 2012)
판타지, 액션, 드라마 | 미국 | 142분 | 개봉 2012.04.05 | 감독 : 게리 로스
주연 : 제니퍼 로렌스, 조쉬 허처슨, 리암 헴스워스, 엘리자베스 뱅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