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수를 보고 있노라면 ‘인간승리’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화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훤칠하고 건장한 체구마저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연이 아니라 주연배우로서 당당히 대접받고 있는 까닭에서다. 조연과 주연이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조연으로 낙인 찍히면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범수의 활약은 그만큼 더 눈부시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캐릭터라면 류승범도 뒤지지 않는다. 말끔한 인상보다는 양아치에 가까운 외모를 자랑하지만 그의 연기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정하는 그야말로 성격파 배우다. 영화배우 황정민은 평소 배우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한 소신을 무너뜨리고 아무나 배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인물이 류승범이었다고 한다.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연기를 자랑하는 배우라는 말이다.
그 둘이 손을 잡은 영화가 개봉됐다. ‘시체가 돌아왔다’라는 다소 엽기적인 제목의 영화다. SBS ‘샐러리맨 초한지’를 통해서 코믹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이범수와 이름만으로도 웃음부터 나오게 만드는 류승범이 만났다니 일상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실컷 웃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앞서도록 만든다. 영화를 보는 동안 혹시라도 배꼽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있으니 잠시 맡겨놓는 것도 좋겠다.
그런데 그런 기대와 달리 폭소는 터지지 않았다. 잔잔한 웃음은 몇번 있었지만 박장대소할 만한 장면은 결단코 없었다. 코믹 연기의 대가들이 출동했건만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너무 코믹으로만 나가려고 한 점을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겠다. 자연스러운 웃음이 아니라 억지로 웃기려고 하다보 니 결과적으로 웃기지도 않는 영화가 돼버린 것이다.
자, 생각해보자. ‘샐러리맨 초한지’가 대놓고 웃기는 드라마였던가. 아니다. 코믹형식의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기업드라마의 형식을 취하면서 의외의 웃음을 주던 드라마였다. 특히 마지막에 등장하는 에필로그는 드라마 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들이었다. ‘샐러리맨 초한지’의 성공 요인에는 이러한 의외성이 크게 작용했다. 시청자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빵빵 터지니 웃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와 달리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에서는 그런 의외성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스토리는 예측 가능했고 전개는 산만하고 지루했으며 안치실에 있는 시체를 바꿔치기한다는 소재마저 그다지 신선하지 못했다. 이는 배우들의 문제라기보다는 상상력의 빈곤을 드러낸 시나리오에게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작가가 이 영화의 감독이다. 어째서 이범수와 류승범이 출연했는데도 웃기지 않는 영화가 되었는지 납득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요즘 한국영화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감독이 각본까지 맡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내용은 부실하고 밑도 끝도 없는데다가 개연성마저 없는 영화들이 양산되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공효진과 성격파 배우 하정우를 데려다 놓고도 뻘짓이나 하고 있는 ‘러브픽션’도 그런 영화 가운데 하나다. 자신이 쓴 각본에 스스로 만족하다 보니 그저 자기만 만족하는 영화에 머무르고 마는 것이다.
이범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전체적인 완성도보다는 배우들의 개인기로만 웃기는 영화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교하고 깔끔하게 웃긴다. 영화 속 황당한 상황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시체가 돌아왔다’에 참여한 배우로서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조선일보 3월 27일자)”라고 말했었다. 제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이러한 이범수의 자신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는 시체는 돌아왔을지 몰라도 이범수와 류승범은 돌아오지 못한 영화였다. 이름값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앞서는 이유에서다. 이범수는 또한 “‘초한지’의 유방처럼 웃기는 역할을 많이 한 배우인데 몸이 안 근질거렸겠는가.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내가 직접 골을 넣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팀을 위해) 더 좋은 찬스를 만들어내는 방법 같은 것을 배웠다.”고도 했었다.
그러나 스트라이커는 역시 골을 넣어야만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알게해준 영화였다. 헛발질만 해서는 골을 넣을 수도 없거니와 이길 수는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이범수와 류승범을 투톱으로 내세웠다는건 둘 중의 하나라도 골을 넣어야 한다는 말이다. 스트라이커가 미드필더 역할에 만족한다면 도대체 소는 누가 키우고 골은 누가 넣는단 말인가.
시체가 돌아왔다(Over My Dead Body, 2012)
범죄, 드라마 | 한국 | 110분 | 개봉 2012.03.29 | 감독 : 우선호
주연 : 이범수(백현철), 류승범(안진오), 김옥빈(한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