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남자들에게 첫사랑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녀의 이름마저 희미해졌지만 그래도 한때 누군가를 사랑했었다는 사실이 마냥 흐뭇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사람. 현실과 관계없이 남자들에게 첫사랑은 일종의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장르이기도 하다.
이런 남자들의 첫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본격적으로 건드린 영화가 있다. 드라마 ‘해품달’에서 연기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한가인과 “왜 말 한마디 안하고 돈만 받아 가느냐”며 성동일에게 타박을 듣고도 ‘1박2일’ 시즌1에 이어 시즌2까지도 꿰찬 엄태웅 주연의 ‘건축학개론’이다. 신입생 시절에 만나 야릇한 감정을 키우다 헤어져 15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는 두 가지 시제로 진행된다. 건축설계사 승민(엄태웅)에게 제주도 주택의 설계를 의뢰하는 서연(한가인)의 만남이 하나의 축을 이루고 공대 건축학과 신입생 승민(이제훈)과 음대 피아노학과 신입생 서연(배수지)이 또 하나의 축을 이룬다. 그리고 15년의 시차를 두고 현재의 승민-서연(엄태웅-한가인)과 과거의 승민-서연(이제훈-배수지)이 만나고 헤어지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흔히 사랑은 갑자기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 영화에서의 승민과 서연의 만남도 그랬다. 음대생이면서 건축학과 전공교양 과목인 건축학개론을 듣던 서연의 사는 곳이 자신과 같은 동네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승민은 묘한 동질감에 이끌리게 된다. 그녀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 그녀와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 그녀와 같은 노선을 따라 통학한다는 사실이 호기심 이상의 감정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순수하고 풋풋했던 첫사랑의 감정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기에 표현할 줄 몰랐고 표현하질 못했기에 결국에는 놓치고 말았던 안타까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 영화에서도 승민은 자신의 감정을 서연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오해 아닌 오해가 생기면서 마침내 첫사랑을 놓치게 된다.
이러한 감정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느껴보았음 직하다.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모하게 고백할 수도 없기에 망설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게 빼앗기게 되는 그런 애매한 상황의 감정 말이다. 괜실히 고백했다가 어색해지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결코 친구 이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절망적인 선언을 듣게 되면 어떡하나 싶기도 하기에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백하지 않으면 만남은 지속될 수 없다.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서지석이 망설이는 사이 고영욱에게 박하선을 빼앗기는 것도 그 때문이었고 KBS2 ‘사랑비’에서도 장근석은 먼저 선수 친 김시후에게 윤아를 빼앗긴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대부분의 첫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용기가 부족했다기보다는 확신이 부족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서툰 사랑은 누군가에게 터놓고 말하고 싶어지는데 이 영화에서 승민의 연애상담 상대자가 재수생 납득이(조정석)라는 설정은 다소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그는 여자에 대한 자신감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승민에게 여자를 쟁취하는 법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또한 서연에 대한 배신감으로 남득이에게 안겨 울부짖는 승민에게서 많은 남자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먹먹함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건축학개론(2012)
멜로/애정/로맨스 | 한국 | 118분 | 개봉 2012.03.22 | 감독 : 이용주
주연 : 엄태웅(현재 승민), 한가인(현재 서연), 이제훈(과거 승민), 수지(과거 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