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상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미스터리한 일들도 많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가 말하듯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그러한 일들 말이다. 영화 ‘화차’는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진 약혼녀의 실종에서부터 시작된다. 왜 없어진 것인지, 도대체 어디로 떠난 것인지, 타인에 의한 납치인지 아니면 스스로 떠난 실종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의문들 투성이다.
그러한 의문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럽다. 약혼녀가 사라진 곳은 고향집이 있는 안동으로 향하던 고속도로 휴게소였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예비 신랑이 커피를 사러 간 잠깐의 시간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동하기가 결코 수월하지 않은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뭐에 홀린 기분일 수밖에 없었다.
부드러운 로맨스 가이에서 한 성격하는 성격파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이선균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며 양다리의 당위성을 주장하던 김민희가 주연을 맡은 영화 ‘화차’는 이처럼 납득할 수 없는 의문들을 던져놓고 시작된다. 납치라면 치정이나 원한이 주된 원인일 것이고 실종이라면 무언가 말 못할 사정이 있을 터였다. 그녀에 대해서 알아가면 갈수록 더욱 혼란스럽기만 하고 그러다 종내에는 그녀의 추악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일본 ‘미스터리의 여왕’이라는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우리 이웃의 범죄’로 요미모노 추리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후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날카롭게 파헤치면서도 상처받은 인간의 모습을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려내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60여 편의 작품을 발간하고, 수십 여 개의 문학상을 받으며 일본 미스터리 소설계의 1인자로 인정받고 있는 그녀는 일본 월간지 ‘다빈치’가 매년 조사하는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순위에서 ‘에쿠니 가오리’와 ‘요시모토 바나나’ 등을 물리치고 7년간 1위를 차지하며 명실상부 현대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명성을 높이고 있기도 하다.
원작과 원작자의 수준이 이러하니 이 영화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작에 충실하기만 해도 기본은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스릴러인데 전혀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고 추리극이지만 뒷이야기가 그리 궁금하지도 않다. 장르가 장르이니만큼 가슴 졸이면서 봐야 하는 게 정상일 텐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러한 순간은 한 번도 없었다. 도대체 이 영화의 문제는 무엇일까?
어쩌면 스토리에는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 중에서 최초로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영화화된 작품으로 ‘역대 일본 추리소설 베스트 10’에 오르며 ‘사회파 미스터리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는 베스트셀러이니 말이다. 1992년 출간되어 제6회 야마모토슈고로상(1993)을 수상, 평단과 독자를 사로잡은 수작으로 평가받으며 작가를 대가의 반열에 올라서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풀어가는 방식에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원작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그러니 일단 원작은 잊어버리자. 아무리 대단한 작가의 작품이라 하더래도 원작을 맹신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이유에서다. 그러니 순전히 영화에 대해서만 얘기하기로 하자. 원작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말이다.
먼저 제목. 이 영화의 제목 ‘화차(火車)’는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태워 지옥을 향해 달리는 일본 전설 속의 불수레’를 가리킨다. 한 번 올라탄 자는 두 번 다시 내릴 수 없다는 운명의 수레다. 원작의 제목과 똑같이 한 것은 좋으나 문제는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이야 ‘화차’라는 단어만 들어도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정서가 다른 우리로서는 그저 의미를 알 수없는 ‘불의 전차’ 정도로만 생각될 뿐이다. 제목부터 미스다.
다음 내용. 약혼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설정은 추리소설로서는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를 스크린에 옮겨놓으니 어딘지 어색하고 왠지 어거지로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사건의 흐름 자체도 그저 평면적이다. 스릴러물에서 필연적으로 동원해야 하는 입체감이 없으니 자연히 긴장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약한 긴장감은 집중력마저 떨어지게 만드는 연쇄효과로 이어진다. 스릴러나 추리극으로서는 실패작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그리고 배우. 이 영화에서 집중 조명을 받은 배우는 이선균이 아니라 김민희였다. CF 하나로 벼락스타가 되었지만 오래도록 연기자로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나이만 먹어온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모처럼 비중 있는 역할, 그것도 잔인한 악역으로 변신한다고 하니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민희의 악역 변신은 명백히 실패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스토리를 지배해야 하지만 오히려 끌려가고 있는 인상이 짙은 탓이다.
영화 ‘추격자'(2008)에서 우리 이웃에 있을법한 평범한 인상의 살인자를 리얼하게 그려냈던 하정우만큼은 아니더래도 어느 정도 현실적인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보여주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화차’에서 김민희는 CF배우의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저 예쁜 여자에 머물렀다. 어쩌면 감독이 김민희에게 원하는 것도 그 정도였는지도 모른다. 예쁜 살인마. 그렇다면 이는 감독이 원작을 잘못 해석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화차(火車, 2012)
미스터리 | 한국 | 117분 | 개봉 2012.03.08 | 감독 : 변영주
주연 : 이선균(장문호), 김민희(차경선), 조성하(김종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