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돈이라면 남기시겠습니까?
구내식당 입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는 목적으로 붙여놓은 내용이다. 만일 돈이라고 해도 그렇게 터무니없이 남겨서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돈과 음식물을 비유한다는 것 자체가 억지이기는 하지만 돈만큼 확실하게 가슴에 와닿도록 만드는 대상도 없으리라. 그런면에서 본다면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효과적인 문구가 아닐 수 없다.
그에 비해서 ‘시간은 돈’이라는 말은 억지가 아니라 누구나 피부에서 느끼도록 체감할 수 있는 말이다. 돈은 있을때 아껴야 하는 것처럼 시간도 허송하지 않고 최대한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서두르지 못해서 피해본 사람도 있을게고 반대로 서둘러서 이득을 본 사람도 있을게다. 재산을 탕진하고 패가망신한 사람처럼 허송세월로 시간만 보내다가 폐인이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간을 돈으로 묘사한 ‘인타임(In Time)’은 비교적 참신한 소재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시간은 돈’이라는 말을 실감하면서 살아왔지만 정작 시간이 돈인 세상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돈이 없어서 비참한 생활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처럼 시간이 돈인 세상에서는 시간이 없을 경우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런지 상상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을 터였다.
물론 녹녹치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란게 저금할 수도 없거니와 지갑에 넣어 다닐 수도 없는 것이니 돈으로 묘사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만큼 억지인 측면도 없지 않다. 사람들 팔둑에 내장되어 있는 시계라는게 그렇다. 마치 인류의 마지막날 즈음에는 사람마다 바코드를 새기게 된다는 말처럼 다소 황당하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마땅한 방식도 없을거 같기도 하다.
영화의 시작은 다소 충격적이다. 주인공 윌의 엄마는 은행에서 대출한 빚을 갚고 버스비만 달랑 남겨놓았는데 하필이면 그때 버스요금이 오르는 통에 하는 수 없이 집까지 달릴 수 밖에 없었고 집에 가면 그나마 아들에게서 얼마간의 시간을 빌릴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서 아들을 만나게 되지만 1초가 부족해서 결국 아들의 품에 안겨 한많은 세상을 뜨게 된다는 설정은 작위적이지만 서글프기도 하다.
게다가 시사적이고 교훈적인 측면도 가미되어 있다. 돈이 많다고 반드시 행복한 사람이 아니듯 시간이 많다고 반드시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는 부분을 통해서다. 무릇 돈이고 시간이고 살아가는데 있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있으면 된다는 교훈이다. 필요이상으로 가지게 되면 오히려 더 불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것은 가져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테니 왠만한 사람들은 그 심정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리라.
그런데 이 영화 참신한 소재를 가지고 상투적으로 버무리고 있다. 초반은 신선했지만 그 이후에는 억지가 억지를 낳으며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되어버렸다. 특히 많은 시간을 기증받아 엄마와 함께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갈 기대에 부풀어 있던 주인공이 단 1초가 없어서 죽어야 했던 엄마의 죽음을 목도하고서도 그 이후의 삶이 의미없이 흥청망청 허비한다는 점은 도대체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리송하기까지 하다.
결국 주제의식을 잃고 방황하던 영화는 이완 맥그리거와 카메론 디아즈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인질(A Life Less Ordinary, 1997)’의 SF버전이 되는 길을 선택하고 만다. ‘시간이 돈’이라는 참신함은 포기하고 상투의 극치가 된 것이다. 아무리 풀어가기 어려운 소재였다고는 하지만 상당히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여주인공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맘마미아’에서처럼 매력적이지 못했다는 점도 상당히 불만이다.
인타임(In Time, 2011)
SF, 액션, 스릴러 | 미국 | 109분 | 개봉 2011.10.27 | 감독 : 앤드류 니콜
주연 : 아만다 사이프리드, 저스틴 팀버레이크, 킬리언 머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