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만 보면 대단히 엽기적인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주된 소재들은 강간, 간통, 화간, 납치, 감금, 강제 성전환 등이다. 피부이식이나 생체실험 그리고 성형수술 등과 같은 부분은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있어 그저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소재만 보면 무더위를 잊기 위해 한여름 밤에 봐야만 할 것같은 남량특집으로 생각될 정도다.
그런데 이 영화 묘하다. 엽기적이지만 결코 역겹지가 않고 괴기스럽지만 전혀 공포스럽지가 않다. 오히려 엽기적인 소재를 잘도 버무려서 그럴듯한 영화로 만들어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소름끼치도록 끔찍한 영화를 각오했던 내 자신이 머쓱해질 정도다. 이런 영화를 만든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대단한 것일까 아니면 이런 영화를 보고도 이런 평가를 내리는 내가 이상한 것일까.
영화 ‘내가 사는 피부’는 저택에 감금된채 생체실험에 이용당하는 여자와 그녀를 관찰하는 성형외과 의사에 관한 이야기로 앞에서 말한 엽기적인 소재들이 가득한 영화다. 주인공 로버트는 교통사고 화제로 아내를 잃은 후 완벽한 인공피부를 만들어 내는데 집착한다. 그리고 그 연구의 임상실험 대상으로 베라를 선택한다. 로버트에게 있어 베라는 사실상 마루타였던 셈이다.
그렇다고 로버트가 베라를 임상실험의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가 전혀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잃게 만든데 대한 복수였기 때문이다. 강간 당한데 대한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다 자살했던 딸에 대한 복수이면서 그와 동시에 자신의 연구에 대한 임상실험도 할 수 있으니 어쩌면 로버트에게 있어 베라는 일석이조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로버트가 비센테의 남성성을 강제로 거세한 이유는 간단하다. 성기를 잘못 놀려 한 여인의 삶을 파괴시키고 송두리채 빼앗아 가버린데 대한 처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까지 시킨 것은 여자로 살면서 여자의 고통을 직접 느껴보라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근육질의 남자보다는 여자가 임상실험의 대상으로는 더욱 용이했으리라.
하지만 로버트는 한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만다. 베라의 얼굴을 자신의 죽은 아내와 똑같이 만들었던 것이다. 다른 남자와 통정하고 바람나서 도망갔다 교통사고 화제로 흉측한 얼굴이 되어 돌아온 아내. 그러나 그 댓가는 혹독했다. 베라를 통해서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로인해 자신의 연인이라도 되는듯 연민의 정을 느끼게된 것이다. 마치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사랑하게된 피그말리온 처럼.
오래전 영화중에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1993)라는 영화가 있었다. 낭만적인 제목과 달리 이 영화도 상당히 엽기적인 영화였다. ‘Boxing Helena’라는 원제처럼 사랑하는 여인을 소유하기 위해 가둔다는 내용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여인의 다리를 절단하고 양팔을 절단하기에 이른다. 어쩌면 ‘내가 사는 피부’도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못지않은 엽기적이고 막장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사는 피부’를 보면서 흉측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은 전편에 흐르는 클래식 선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때로는 감미롭고 때로는 웅장하게 울려퍼지면서 영화를 품위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심지어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도 바이올린이 들려주는 선율을 감상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을 정도다. 소재는 엽기적이지만 지적인 영화라고 느껴질 만큼 훌륭한 곡들이었다.
다시 영화 내용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피조물에 사랑을 느낀 로버트는 혹독한 댓가를 치르고 만다. 욕정에 사로잡혀 베라와 섹스를 나누려던 로버트는 베라의 총에 맞아 알몸 상태로 숨지기에 이른다. 로버트는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베라를 자신의 남성을 받아들일만한 여자로 여기기에 이르렀지만 정작 베라의 몸 속에 들어있는 것은 여자가 아닌 남자 비센테였던 것이다.
내가 사는 피부(La Piel Que Habito, The Skin I Live In, 2011)
드라마 | 스페인 | 117분 | 개봉 2011.12.29 | 감독 : 페드로 알모도바르
주연 : 안토니오 반데라스, 엘레나 아나야, 마리사 파레데스, 블랑카 수아레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