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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 - Journeyman이 바라본 세상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

좋은건사라지지않아요

머리가 무거울 때면 펼쳐드는 잡지가 있다. 때로는 시원한 바닷가로 안내하고 때로는 향기로운 소식을 전해주면 때로는 감미로운 노래를 들려주는 잡지, 그 이름은 바로 월간 페이퍼(PAPER)다. 페이퍼는 원래 홍대 근처 카페에서 무료로 나눠주던 잡지였다. 하지만 홍대가 생활권이 아니었던 내가 페이퍼를 만난 건 순전히 싸다는 이유에서였다. 교보문고에서 단돈 천 원에 꽤 그럴싸한 잡지를 집어 들었으니 그게 바로 페이퍼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 단돈 천 원이던 책값은 인상의 인상을 거듭하면서 5천 원까지 올랐지만 매월 말일이면 이달에는 무슨 내용으로 채워졌을까 기대하며 책방을 서성이게 만드는 묘한 중독성이 있는 잡지다. 세월이 흘러 오른 가격만큼이나 내 나이도 많아졌지만 그래서 그 흐른 시간만큼이나 괴리감을 느끼게 될 것도 같지만 아직도 페이퍼를 보고 있노라면 세월의 흐름이 무색할 정도로 언제나 한결같다. 더불어 내 나이도 잊게 되는 것 같다. 그게 바로 페이퍼만의 매력이겠지만.

그동안 페이퍼는 어엿한 대중매체로 자리 잡았다. 편집장인 황경신은 소설가로 시인으로 방송에도 출연할 만큼 유명인사가 되셨고 푸근한 몸매와 성격의 소유자 정유희 기자 또한 나름대로 이름을 떨치기도 하셨다. 아, 그보다 먼저 페이퍼에서 만화를 그렸던 박광수는 조선일보에 ‘광수생각’을 연재하면서 거물이 되었고 김양수 기자도 ‘음악의 재발견’이라는 카툰을 조선일보 주말매거진에 연재하기도 했다. 김양수는 네이버 웹툰에서 ‘생활의 발견’이라는 코너를 연재하고 있다.

그리고 페이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페이퍼의 첫 코너 ‘이 달에 쓰는 편지’의 주인공 김원이다. 그의 이름은 페이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황경신 편집장의 시에도 그의 이름이 남아있고 포토에세이에도 그의 이름이 담겨있다. 페이퍼의 발행인이자 사진작가로서 그의 흔적은 페이퍼 전체에 걸쳐 남아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그의 이름은 친숙하기만 하다.

“당신이 잊고 지낸 소중한 것들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그의 책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가 나왔다고 했을 때 반가움이 앞섰던 것도 그 때문일 게다. 페이퍼를 통해서 단편적으로만 만나왔던 그의 글과 사진을 마음껏 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책에는 김원이 직접 찍어온 사진과 캘리그래피 그리고 김원이 당신의 영혼을 위로하는 79통의 편지가 담겨있다.

그런데 이 책 범상치가 않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페이퍼스럽다. 왼쪽 페이지에는 큼직한 제목을 적어놓고 오른쪽에 본문을 적어놓은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원하고 깔끔하고 특이하다. 게다가 중간 부분에는 90여 페이지에 걸쳐 사진이 들어있고 왼쪽 아래에는 노래 제목과 뮤직 플레이 표시가 들어있다. 그가 들려주고 싶은 노래 47곡으로 사진과 함께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설명이 첨부되어 있다. 그답고 페이퍼다운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월간 PAPER 백발두령 김원의 첫 작품집이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창작이 아니다. 그가 15년간 페이퍼를 통해서 털어놓았던 고백의 묶음들이다. 앞에서도 말했던 ‘이 달에 쓰는 편지’를 재구성한 것으로 어찌 보면 참 쉽게 책을 냈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글을 모아놓고 싶었던 독자들에게는 소중한 선물이다. 더불어서 그가 들으라던 노래를 들으며 사진을 보는 재미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 책의 제목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인 앤디가 레드에게 쓴 편지 중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그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희망은 좋은 거예요. 아주 좋은 것 중의 하나죠.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 그러면서 김원은 “생각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생각. 그런 생각들에 머무르는 시간들이 길어지는, 그런 날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싶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김원은 미술학도로서 다 늦은 나이에 돌이 갓지난 아이와 함께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그곳에서 배운 것은 자신이 미술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고 그림을 포기하자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페이퍼를 만들고 15년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 배운 교훈들 덕분이라는 고백에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그만큼 이 책에는 그 남자와 페이퍼의 치명적인 매력으로 가득하다.

“피카소처럼 위대한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접은 후로, 나는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유럽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유럽의 구석구석을 들쑤시고 돌아다니며 유럽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공부한 셈이다. 내가 유럽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배운 점이 있다면, 그들은 철저히 ‘즐기는 삶’을 살아간다는 점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즐겁게 살겠다는 자세를 그들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서든 즐거운 삶을 살겠다는 거다. “목숨을 걸고 즐겁게 살겠다는데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삶의 목표 자체가 ‘즐겁게 사는 것’이라는데 그걸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돈이 많은 사람들은 많은 대로, 돈이 없는 사람들은 없는 대로… ‘즐거운 삶’을 위해, 저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P.283

저자 소개 : 1995년 11월에 문화전문지《PAPER》를 창간한 발행인으로 백발두령으로 불린다. 주변에 ‘놀 수 있을 때 노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다’라는 무책임한 권유를 일삼는 인물로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그중에서도 추상화에 탐닉한 바 있다. 젊은 시절 내내 ‘피카소처럼 유명한’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며 살았으나 1984년부터 한 신문사의 출판국에 입사하여, 7년 동안 아트디렉터로 일했다. 그러다가 1990년에 프랑스로 떠나 2년간 미술대학에서의 유학생활을 통해 ‘피카소처럼’ 대단해지겠다는 망상을 접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멋진 그림을 그리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 낙천주의자이며 대체로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사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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