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수의 뿔난 생각! 악마의 백과사전

악마의백과사전

모든 인간에게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하나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속에 숨어있는 얼굴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모든 사람은 이중인격자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겉과 다른 속을 들키지만 않았을 뿐 모두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두 얼굴들의 서로 다른 주장은 필연적으로 후회를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광수의 뿔난 생각!’이라는 수식어가 달린 ‘악마의 백과사전’은 그러한 인간 심리를 담고 있는 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단어들이 실상은 사전적인 의미와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하는 까닭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악마스러운’ 내용이라기보다는 ‘인간다운’이라거나 ‘사람다운’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보다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사람다운’이라는 말이 ‘악마스러운’과 같은 맥락인지도 모르지만.

이 책의 첫인상은 무척 강렬하다. 대부분의 책들이 가격을 올리기 위해 양장본으로 발행하는 것과 달리 이 책의 표지는 무척 고급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광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대중적이고 신파적이며 통속적인 내용일게 뻔한데도 표지가 주는 무게의 느낌은 대단하다. 하마터면 ‘광수’라는 이름을 잊고 정말 ‘악마’의 단어들이 가득한 진짜 백과사전인 줄로 착각하게 만들 정도다.

표지를 열면 덴마크 출신의 사진기자로 최초의 사회개혁을 위해 사진을 사용했던 자콥 리스의 글과 만나게 된다. “나는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석공이 망치로 바위를 백 번 때려 금이 가게 하는 것을 구경한다. 바위가 백한 번째 망치질로 마침내 둘로 갈라졌다면, 나는 그것이 마지막  한 번의 망치질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의 모든 망치질 덕분에 생긴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중하는 현실에서 이 글이 주는 울림은 무척 큰 편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 번은커녕 두세 번 만에 포기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 번만 더 찍으면 넘어갈지도 모르는데 그 한 번을 앞두고 포기하는 일도 있을 거다. 그러면서 광수는 말한다. “오늘, 당신은 몇 번째 망치질을 하고 있습니까?” 광수스러운 시작이다.

이 책의 악마성은 바로 다음부터 시작되는 ‘악마의 속삭임(the Devil’s Whisper)’을 통해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각기 10가지의 질문을 통해서 자신의 악마적인 정도를 평가해보게 만드는 것이다. “친구의 애인에게 몰래 접근했다가 그 사실을 친구가 알게 되었다.” 또는 “오랫동안 공을 들인 여자와 술을 한잔했다. 그런데 여자가 그만 과음으로 인해 정신을 놓아버렸다. ‘이때다!’하고 그녀를 모텔로 옮겼는데. 침대에 눕히자마자 여자가 자신의 옷에 토하기 시작했다.”와 같이 선과 악이 대립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본성을 확인해 보도록 하고 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이었던 친구의 애인 문제에 대한 네 가지 지문은 다음과 같다. “① 친구의 애인이 내게 먼저 접근했다고 거짓말하고 그런 헤픈 여자와 당장 헤어지라고 말한다. ② 우정은 우정이고 사랑은 사랑, 즉 별개의 감정이라고 우긴다. ③ 그런 사실 없다고 딱 잡아뗀다. ④ 그날로 친구가 내게 할 수 있는 모든 연락 방법을 끊고 잠수탄다.” 처럼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읽다가 어느새 몰입되어 네 가지의 지문 중에서 나와 맞는 항목이 무엇인지 찾아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또 다른 얼굴 악마성과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악마의 속삭임을 지나면 본격적인 ‘악마’의 백과사전이 시작된다. ㄱ부터 시작해서 사전적인 의미와 함께 악마적인 해석을 나란히 설명해 놓았다. 어쩌면 전자가 인간의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얼굴에 대한 설명이라면 후자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숨겨놓은 얼굴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 개그콘서트에서 황현희가 진행했던 ‘불편한 진실’처럼 말이다.

가령 ‘가난’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명사] 살림살이나 금전적 상태가 풍요롭지 못하고 모자람. 또는 곤궁한 상태”인데 비해서 “사랑마다 기준과 정의가 다른 지갑의 무게. 일반적으로 지갑의 품질과 관계가 없으며 용모나 인생관, 인격 따위와도 크게 연관이 없다”라는 전혀 다른 풀이를 추가해 놓는 식이다. 다분히 인간적이지만 악마적이기도 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사전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광수의 뿔난 생각!’이라는 문구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다른 ‘광수생각’과 닮은 꼴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작은 울림이 들어있다. 중학교 시절 환경미화원 아들이었던 주봉이의 이야기도 그렇다. 별명이 봉걸레였던 그는 가정 형편상 고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만났을 때는 큼지막한 청소용역업체의 CEO가 되어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걸레는 스스로를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아. 다만 그것을 들고 있는 사람이 창피하다고 여길뿐이지 세상의 더러운 곳을 닦아내는 일을 하는 걸레 같은 존재야말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난 어릴 적 별명인 걸레를 자랑스럽게 생각해”라는 말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미천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인 자신의 직업에 대한 의미를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광수는 성공한 만화가이다. 월간 페이퍼라는 무가지에서 활동하다 조선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만한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런 그를 후배들이 부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그에게도 부러워하는 후배가 있는데 게임회사를 1500억에 넘기고 800억으로 도심의 유명한 건물을 산 젊은 벤처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 후배가 별로 부럽지 않더란다. 그렇게 재산이 많아도 침울한 표정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게임밖에 모르고 살아온 그가 동종업계에서 5년간 일하지 않겠다는 계약 때문에 더 이상 인생의 목표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재미없겠군. 꿈이 없는 인생, 참 삭막하겠군. 그런 생각이 들자, 그가 조금은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1,500억을 가진 사람이 불쌍해 보이다니, 참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후배는 그동안 진짜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서 못 했던 음악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수업을 따라가는 게 너무 벅차서 당분간 한국에 못 갈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왔다고 한다. “그렇구나, 꿈이 사람을 밀고 가는구나. 그런 힘이 없다면 제아무리 돈이 많아도 절대 행복할 수 없구나. 지극히 당연하겠지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생각. 그렇구나, 잊지 말아야지. 내 꿈”

‘광수생각’에서 광수의 만화가 빠지면 서운할 일이다. 많지는 않지만 ‘악마의 백과사전’에도 간간이 광수의 만화를 만날 수가 있는데 그의 만화에는 여전히 촌철살인의 내용들로 가득하다. 물론 그가 그려온 만화 편수를 생각하면 소재 고갈도 당연한 것이어서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그가 만화 대신 글을 더 많이 채워 넣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 글들도 만화처럼 재미있다. 그중의 하나가 압구정에서 ‘우리 동네에는 내 손톱 닮은 초승달이 뜬다’라는 매우 긴 상호의 소줏집을 부업으로 삼아 경영할 때 여자 손님에게 엮어 천만 원을 떼일 뻔한 내용인데 이 이야기는 직접 읽는 게 더 재미있으리라.

다음은 이 책 앞머리에 실려있는 ‘악마의 속삭임(the Devil’s Whisper)’에 대한 내용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자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통해서 자신의 악마성(?)을 평가해볼 수 있을 것이다.

1. 친구의 애인에게 몰래 접근했다가 그 사실을 친구가 알게 되었다.
2. 코를 파고 있는데 평소 좋아하던 이성과 눈이 마주쳤다.
3. 오랫동안 공을 들인 여자와 술을 한잔했다. 그런데 여자가 그만 과음으로 인해 정신을 놓아버렸다. ‘이때다!’하고 그녀를 모텔로 옮겼는데. 침대에 눕히자마자 여자가 자신의 옷에 토하기 시작했다.
4. 여자 친구 집에 놀러 가 막 스킨십을 하려는데 문이 열리며 여친의 엄마가 과일을 들고 들어왔다.
5. 친구가 내게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얘기라며 비밀을 털어놓았다.
6. 방에서 몰래 야동을 보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왔다.
7. 누군가 내게 광화문 네거리에서 옷을 다 벗으면 400만 원을 준다고 한다.
8. 누군가 내게 ‘혹시 이무송씨 아니세요?’라고 물으며 사인을 요구한다.
9. 실수로 사람을 죽였는데, 친구가 우연히 그걸 목격한 후 황급히 뛰쳐나갔다.
10. 길을 걷는데, 처음 보는 젊고 멋진 이성이 갑자기 나에게 키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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