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인생이 드라마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독일 여행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지만, 그 서두를 대한항공 기내에서 생긴 일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돌아보면 이마저도 다 추억이 아니겠는가.
1. 제발 좌석을 바꿔 달라는데
인천공항 입국장을 지나 면세점 앞을 서성이고 있을 즈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대한항공인데 좌석을 바꿔줄 수 없느냐는 말이었다. 우리 가족의 경우 왼쪽 창가 3자리와 그 라인으로 이어진 중앙통로 1자리 해서 모두 4자리를 예약한 상태였는데 통로 옆자리에 앉은 2석하고 창가의 2석하고 바꿔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한 명은 떨어져야 하고 3명은 나란히 앉을 수 있지 않느냐는 뉘앙스였다.
사연은 이랬다. 중앙통로 쪽에 앉은 두 자리 중에서 한 자리가 아이의 자리인데 땅콩 알레르기가 있기에 최대한 가장자리로 앉고 싶어 한다는 말이었다. 간식으로 땅콩이 나오니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사정은 딱했지만 혼자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의견을 모아본 결과 어렵겠다고 답변했더니 그러면 간식으로 땅콩이 나오더래도 드시지 말아달란다. 자리는 못 바꿔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2. 그렇다고 맥주를 포기할 수도 없고
그런데 막상 비행기에 타고 보니 중앙통로 쪽 좌석 두 자리가 비어있었고 끝내 아무도 타지 않았다. 정말 문제가 심각했던 것인가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는데 남자 승무원이 와서는 앞쪽에 빈자리가 있어 그쪽에 앉혔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이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아이 엄마가 얘기하길래 하는 수 없이 그런 부탁을 드렸노라며 미안하다고 한다. 어쨌든 원만하게 해결되어 다행이었다. 간식으로 나온 땅콩을 먹을 수 있었으니. 땅콩을 보니 맥주가 생각나는 것은 인지상정. 부담 없이 음료로 맥주를 주문했다. 땅콩을 포기해야 했다면 맥주도 포기해야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3. 도대체 라면이 뭐길래
독일행 대한항공에서 제공하는 기내식의 메뉴는 모두 5가지였다. 하나는 생선이었고 다른 하나는 닭고기였으며 또 하나는 낙지비빔밥이었는데 다른 두 개의 메뉴가 심상치 않다. 저칼로리 국수와 라면이었던 것이다. 라면은 먹고 싶은데 일단 식사를 하기는 해야 했으므로 하는 수 없이 닭고기 메뉴를 주문했지만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눈 딱 감고 아이들 핑계를 대며 라면을 더 먹을 수 있는지 물어나 봤다.
그랬더니 웬걸 바로 가져다 드리겠단다. 당당하게 요구해도 될걸 괜시리 주눅 들어 2개만 달라고 했나 후회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더 달라고 하기도 뭐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아이들에게 묻어 한 젓가락 얻어먹었더니 그리 특별한 맛은 아니더라는.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식사 시간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원하면 바로 가져다준다는 점이었다. 식사 시간이 지나고도 승무원들이 컵라면을 들고 다닌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4. 이러면 생색을 낼 수 있으리니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충전기 가방을 들고 탔는데 마침 모든 좌석에 USB 충전 단자가 있었다.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충전하기에는 부족할지 몰라도 스마트폰을 충전하기에는 충분했다. 일반적으로 시차 문제 때문에 현지에서 사용할 배터리를 남겨두기 위해 비행시간 동안에는 스마트폰을 꺼놓기 마련인데 충전도 하고 활용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세상 참 좋아졌구나 싶었다. 때마침 USB 충전기도 넉넉하게 준비한 터라 하나씩 나눠주며 생색을 낼 수 있었다. 아빠 준비성 대단하지?
5. 난 라면이 먹고 싶었다구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속이 더부룩하길래 이번에는 라면을 먹어볼까 싶었는데 웬일인지 메뉴에서 아예 빠져 있었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인천발 비행기에는 라면을 잔뜩 실을 수 있지만 돌아오는 프랑크푸르트발 비행기에는 그럴 수 없었던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기대했던 메뉴가 없으니 서운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차라리 맛이나 보여주지 말던가.
6. 맥주는 또 뭐길래
라면처럼 서운한 일이 또 있다.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서는 간식으로 땅콩과 함께 맥주도 얻어먹을 수 있었는데 인천행 비행기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인천발 비행기는 오후 1시 출발이고 비행시간도 12시간이나 걸리지만, 프랑크푸르트발 비행기는 저녁 7시 출발이고 비행시간도 10시간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바로 식사를 할 수 있나 없나의 차이가 아닐까. 어쨌든 그런 서운함은 와인으로 달랠 수밖에…
데레사
2016년 9월 16일 at 8:06 오후
땅콩 알러지, 그거 대단히 무서운 거더라구요.
미국에서는 땅콩 알러지 있는 아이의 짝은 땅콩으로 된 음식도 못 먹고 가야하고
구내식당에서도 좌석이 따로 해서 아주 엄격하게 관리를 합디다.
언젠가 땅콩 버터 먹은 애인과 키스하고 죽은 여자가 뉴스에 나온 적도 있어요.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잘 생긴다고 하던데 다행이 우리나라에는
그런 아이들이 없는것 같아요.
나도 다음에 비행기타면 라면 꼭 먹어 봐야겠습니다. ㅎ
journeyman
2016년 9월 19일 at 9:47 오전
알러지가 무섭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급하게 일처리를 해야하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렇게 심각하다면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혹시나 업그레이드를 노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비즈니스에서는 라면을 직접 끓여준다는데
이코노미는 그냥 컵라면이라 별 맛은 없었어요. ㅋ
cecilia
2016년 9월 17일 at 9:25 오후
저도 비행기를 꽤 타고 다녔었는데 라면이 메뉴에 있는 건 못봤어요.
대한 항공에 있는 메뉴인가보죠?
journeyman
2016년 9월 19일 at 9:51 오전
라면이 인기 메뉴라기 보다는
예전에 라면 때문에 승무원에게 갑질했던 대기업 상무 때문에라도 한 번 먹어보고자 했던 심리도 없지 않았구요,
또 속이 더부룩하거나 식사가 별로 안 땡길 때는 라면이 제격이기는 하죠.
게다가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먹는 거니 언제 또 먹어보겠나 하는 생각도 있구요.
요즘에는 알프스 융프라우에 가서도 컵라면 먹고 오는 사람도 많다고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