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님! 인제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 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하고 꼬박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일을 좀 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 말이 많다. 허지만 점순이가 아직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고만 빙빙하고 만다. – 소설 ‘봄봄’ 중에서 –
젊은 나이에 요절한 소설가 김유정의 대표작 ‘봄봄’의 한 대목이다. 이 소설에서 배참봉댁 마름으로 나오는 김봉필은 실레마을 육필이로 통했던 실존 인물로 당시 딸만 여럿 낳아 데릴사위를 들여 부려 먹었다고 한다. 점순이와 성례는 안 시켜주고 일만 부리는 장인과 주인공의 드잡이하는 모습은 실제 있었던 일로 한틀주막에서 술을 먹고 백두고개를 넘어오던 김유정이 직접 목격한 내용을 메모해 두었다가 소설 ‘봄봄’에 썼다고 한다.
경춘선 김유정역의 실레마을(춘천시 신동면 증리)은 김유정의 고향이자 소설 ‘봄봄’의 배경 장소이기도 하다. 강원도 봉평에 이효석 문학관이 있듯 김유정역 실레마을에는 김유정 문학촌이 있는데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광경이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동백꽃’에서 점순이가 주인공 몰래 닭싸움 붙이는 장면이다. ‘봄봄’에서 장인과 점순이의 키를 놓고 언쟁을 벌이는 모습은 그 뒷편에서 찾을 수 있다.
김유정 문학촌은 크게 마당과 생가, 그리고 기념관(김유정전시관)으로 나눌 수 있다. 마당에는 앞에서 말한 소설 ‘동백꽃’의 한 장면이 재현되어 있고 그 왼편으로는 작은 연못과 정자가 있다. 그리고 그 뒤로 있는 언덕 위에 생가가 복원되어 있는데 김유정의 조카와 마을주민의 증언 및 고증을 거쳐 2002년에 복원되었다. 조카는 집의 구조와 크기를 상세히 기억하고 있어서 직접 평면도까지 그려 복원하였다고 한다.
김유정의 생가는 그의 조부가 지었는데 당시 이 마을 대부분의 땅이 그의 소유였다고 한다.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ㅁ’자 형태로 집을 짓고 기와집 골격에 초가를 얹은 것은 헐벗고 못 먹는 사람들이 많던 시절이라 집의 내부를 보이지 않게 하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봉당 굴뚝이 낮은 것도 밥 짓는 연기가 높이 올라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란다. 마을에 끼니를 거르는 집들에 대한 배려의 의미도 있다.
‘봄봄’에서 장인과 주인공이 점순이의 키를 놓고 실랑이 벌이는 장면은 생가 한켠에 있는 장독대 앞에 있다. 장인은 이만큼 밖에는 안 컸다고 하는 것 같고 주인공은 이만큼이나 컸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런 실랑이 장면은 기념관인 김유정전시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야외에 있는 장면이 동상으로 만든 조형물이라면 전시관에는 닥종이 인형으로 재현되어 있다. 주인공과 점순이의 키 차이를 재는 모습이 익살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김유정전시관에는 ‘봄봄’의 마지막 장면인 주인공과 장인의 혈투(?) 장면도 묘사되어 있다. 주인공이 장인의 급소를 잡고 늘어졌을 때였다. 주인공은 ‘장모는 제 남편이니까 역성을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순이는 내 편을 들어서 속으로 고수해 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달려온 점순이는 오히려 ‘에그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라며 주인공의 귀를 잡고 늘어지고 있었다.
‘봄봄’은 1935년에 발간된 잡지 ‘조광’ 12월호 323페이지부터 333페이지에 실린 작품으로 김유정전시관에는 해당 잡지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원본도 전시되어 있다. 교과서에서만 보아왔던 역사적인 자료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소설가 김유정과 그의 작품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김유정문학촌의 입장료는 2천원이며 9시부터 6시(동절기에는 5시)까지 운영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이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붉은색의 동백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백꽃과는 전혀 다른 노란색의 생강나무 꽃이며 예전부터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 혹은 산동백으로 불러왔다고 한다. 이를 알리 없는 강원도 출신이지만 김유정은 그의 작품에서 ‘노란 동백꽃’으로 표현했고 ‘알싸한 그리고 향깃한 그 내음새’라는 말로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