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소설 따라 걸어보는 실레 이야기길

실레이야기길

경춘선 김유정 역에서 내려 큰집삼계탕의 궁중삼계탕으로 원기를 회복한 후 김유정 문학촌을 들렀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실레마을을 돌아볼 차례다. 한라산 올레길을 비롯해서 지리산과 북한산에 둘레길이 있고 부산 바닷가에 볼레길이 있다면 실레마을에는 이야기길있다. 이름하여 김유정 실레 이야기길이다. 길은 김유정 문학촌 앞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왼쪽이 입구, 오른편이 출구라고 할 수 있다.

금병산 등산로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산길이지만 다른 곳처럼 둘레길이 아니라 이야기길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다른 곳과 달리 산책의 의미보다는 문학 작품 속의 이야기들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곳곳에 팻말을 설치해서 어느 작품에서 어떤 내용의 배경이 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다만 익히 알고 있는 소설보다 다소 낯선 제목들이 더 많아 보인다.

시작은 평이하고 이야기길이라는 다소 단아한 이름을 붙였지만 그래도 산길의 일부인지라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다. 실레 이야기길이 5.2km 길이에 90분 정도 소요되고 금병산 등산로 A코스가 3.81km에 90분, B코스가 4km에 10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하니 길이와 시간만 놓고 보면 등산로와 크게 다르지 않기도 하다. 다만 이야기길은 등산로 중간을 돌아오는 코스로 되어 있다.

시작은 괜찮다. 시골길을 걷는 기분으로 걷다 보면 90분이 아니라 몇 시간이라도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짝짓기를 위해 암컷 앞에서 교태 부리는 수컷 나비의 날개짓을 보는 것도 흥미롭고 들꽃을 보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마을 끝에 이르고 나면 어쩐지 으슥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안전을 위하여 혼자 걷지 마시고 동행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생각날지도 모를 일이다.

무슨 일이야 있겠는가 싶지만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그 산길 입구에 과일 파는 하우스도 있고 비교적 큰 개들도 몇 마리 있다. 혼자서라면 초입부터 망설여질 수도 있겠다. 또한, 인적이 적다 보니 만나는 어쩌다 만나는 사람도 반갑기보다는 왠지 경계부터 하게 된다. 그러니 실레 이야기길을 편안하게 돌아보려면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다니는 게 좋겠다.

실레 이야기길은 16개의 테마로 꾸며져 있다. 첫 번째가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로 들병이(들병장수)란 병에다 술을 가지고 다니면서 파는 사람을 말하는데 김유정 소설에는 19살 들병이들이 먹고살기 위해 남편과 함께 마을에 들어와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내용이 있는데 이들이 인제나 홍천에서 실레마을로 들어올 때 넘어오던 길이라고 한다.

이야기길은 오르막으로 시작해서 전망대를 지난 후에는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나무로 인해서 전망대 시야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실레마을의 경치를 감상하며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이다. 간식을 준비했다면 그 아래 벤치에서 가볍게 먹을 수도 있겠다. 테마로 보면 5번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에서 6번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 구간이다.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중간에 길을 잃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11번 ‘응오가 자기 논의 벼 훔치던 수아리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지 않고 직진하게 되면 길이 끊어져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실제로 앞서가던 처자만 믿고 따라갔다가 넓은 평원에서 길을 잃기도 했었다. 그 아가씨는 우직하게 길을 헤치고 갔지만 나는 왔던 길로 되돌아와 12번 ‘근식이가 자기집 솥 훔치던 한숨길’을 찾을 수 있었다.

실레 이야기길의 하이라이트는 14번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 나오던 데릴사위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들어가면 김유정의 대표작 ‘봄-봄’의 무대인 점순네 집터가 나온다. 한들 주막에서 술을 먹고 백두고개를 넘어오던 김유정이 점순이와 혼례를 시켜주지 않는다며 장인과 주인공이 싸우는 장면을 메모해 두었다가 ‘봄-봄’을 썼다고 한다. 좁은 길이고 안내판이 숨어있어 한눈에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15번 ‘김유정이 코다리 먹던 주막길’에 이르러서는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로 목을 축여볼까 싶었지만, 팻말만 놓여있을 뿐 일반 가정집이었다. 대신 이야기길 끝이자 김유정 문학촌 맞은편에는 ‘봄-봄’이라는 음식점이 있었는데 이 집에서 ‘봄-봄’이라는 자체 브랜드의 생막걸리를 팔고 있었다. 일행이 있었다면 들어가 봤을 텐데 혼자였고 아직 밥때가 아니어서 막걸리 맛을 보지 못했다는 점은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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