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칸이 있는 베를린행 야간열차(CNL; City Night Line)는 프랑크푸르트 남역(Frankfurt Sud)에서 새벽 00시 50분에 출발한다. 역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두어 시간 휴식을 취한 후 한 삼십 분 정도 미리 나와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의외로 밤바람이 차고 비교적 강하게 불었다. 역에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그 어떤 시설도 없는 상황. 여름이라고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약 00시 30분 정도에 기차가 한 대 와서 멈춰 섰다. 전광판에는 분명히 베를린행 열차의 도착을 예고하고 있었는데 도착한 기차에는 베를린(Berlin)이 아니라 프라하(Praha)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더 기다려야 하나 일단 타고 봐야 하나 우왕좌왕하고 있을 즈음 옆에 있던 외국인이 이 차는 프라하행이지만 앞차가 베를린행이라면 알려준다.
당시에는 상황이 다급해서 일단 뛰고 보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기차 두 대가 붙어서 나란히 달리다가 하나는 베를린으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프라하로 나뉜다는 의미였다. 기차 두 대가 나란히 붙어 있으므로 한 번 타면 앞차(또는 뒤차)로의 이동은 불가능하다. 만일 다음 역에서 정차한다면 내려서 옮겨 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전혀 다른 목적지로 가게 될 것이다. 하마터면 국경을 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먼저 좌석 문제. 밤새 달리는 야간열차이므로 좌석이 확보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므로 여행이 피곤해질 것이다. 무임승차 시비가 붙을 수도 있겠다. 두 번째는 비용 문제다. 일정이 어그러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베를린행 차를 놓침으로 인해서 하루를 공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적지 않은 경비가 추가로 소요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베를린행 야간열차를 놓치지 않고 타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 순간 예상치 못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약했던 쿠셋 좌석을 도통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예약한 좌석은 61,62,65,66이었는데 힘겹게 찾아가 문을 열려고 했으나 잠긴 채 열리지 않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앞쪽으로 가보란다. 이 또한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칸은 쿠셋이 아니라 침대칸이었다.
쿠셋 좌석 침대 좌석은 겉에서 보기에도 차이가 명확했다. 침대 좌석은 문이 나무 모양으로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구조인 데 비해서 쿠셋은 섀시로 되어 있어서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가리는 커튼이 있기는 하다). 또한, 침대칸에는 번호 아래 침대 모양 그림이 있다. 알고 보면 간단하지만 처음 타는 야간열차다 보니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한참을 앞쪽으로 걸어가니 그제야 승무원이 보였고 예약한 쿠셋을 안내받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쿠셋은 잠자리가 불편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한다. 떠나기 전에 그런 소리를 적잖이 들었기에 베를린에 도착해서 비몽사몽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나마 첫날이라 시차도 있고 이미 오랜 비행시간을 버틴 후이기에 그런 걱정 없이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거의 졸도 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야간열차를 타려거든 차라리 첫날이 나을 것 같다.
쿠셋은 4인실과 6인실이 있는데 우리의 경우 61.62.65.66번 좌석으로 배정받아서 둘둘씩 찢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으나 4인실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6인실 중에서 가운데 좌석을 뺀 4좌석을 이용하는 형식이었다. 6인실의 경우 허리를 펴고 앉아있을 공간도 나오지 않는 데 비해서 이를 4인실로 바꾸면 첫 번째 침실은 앉아있을 만한 공간이 생기게 된다. 창문 쪽으로 콘센트가 두어 개 있으므로 멀티 콘센트를 가져가면 여러 개를 충전할 수도 있다.
쿠셋은 침대칸에 비해 보안에 취약하므로 문단속은 필수적이다. 유경험자들 말에 의하면 지나가다 툭툭 쳐보고 잠겨있지 않으면 들어와서 가방이나 지갑을 가져간다고 한다(본인이 직접 당해본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문 쪽으로 향하여 눕고 가급적 짐은 발 쪽에 놓을 것을 당부하기도 한다. 또한, 침대칸에는 아침 식사로 빵도 준다던데 쿠셋에 그런 서비스는 없었다.
* 베를린행 야간열차에 대한 간단 정리
1. 야간열차(CNL)는 독일철도패스가 있어도 반드시 사전에 예약해야만 탈 수 있다.
2. 침대칸의 경우 1등석은 독일철도패스도 1등석으로 끊어야만 이용할 수 있다.
3. 쿠셋은 4인실과 6인실이 있는데 객실의 크기나 시설이 다른 것은 아니다.
4. 침대칸은 나무문이고 쿠셋은 샷시문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5. 야간열차를 이용하는 경우 독일철도패스는 오늘이 아니라 다음 날 이용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