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88만원 세대’로도 불리는 20대의 현실과 환상을 그린 장편소설 《퀴즈쇼》의 작가 김영하(40·사진)씨가 최근 서울에서 살던 아파트를 처분했습니다. 향후 1~2년 동안 지구촌 떠돌이로 살면서 창작 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랍니다. 얇고 가벼운 노트북도 새로 샀습니다.
망명도 아니고 이민도 아닙니다. 살던 집까지 정리하고서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다가 글을 쓰겠다는 작가는 아마 우리 문학사에서 처음 등장하는 ‘신인류(新人類)’가 아닐까요. 소설가 황석영씨가 최근까지 런던과 파리에서 머물렀고, 이문열씨가 현재 미국 하버드대학 초청으로 현지에 머물고 있지만, 집까지 팔아서 ‘올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략)
“이러다 엔진이 너무 과열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작가가 처음 됐을 때의 초심이랄까,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됐는데요. 돌이켜보니 그때가 작가로서 가장 행복했던 게 아닌가 싶더군요. 처음 소설을 쓰던 때의 그 마음, 집중에서 오는 기쁨, 뭐 그런 것들을 찾아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요.” …
“소설가 김영하, ‘디지털 노마드’가 되다(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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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에서 사려져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법정, 현대문학 1971. 3.)”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빈 손으로 살아갈 수는 없겠지요. 필요한 만큼은 가져야 하지요. 하지만 필요는 자꾸 커져만 갑니다. 하나를 가지면 다른 하나를 더 얻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니까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자유를 생각하고 일탈을 꿈꿔보지만 늘 그렇듯 현실은 계속 같은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다 버리고 떠나는 작가가 부럽기까지 하네요.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로 위로해 봅니다. 언젠가 우리도 떠날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다만 그날을 기다리며 미리 버리는 삶을 살아보는건 어떨까요?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이니까.” – 법정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