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기독교는 한국의 제사를 인정해야 한다
23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열린 합동세배 행사에서 어린이집 아이들이 세배를 하기 전 재롱잔치를 하고 있다.. 2017.1.23/뉴스1

23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열린 합동세배 행사에서 어린이집 아이들이 세배를 하기 전 재롱잔치를 하고 있다.. 2017.1.23/뉴스1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제사라는 풍속이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경우 제사는 미약한 인간이 자연과 신을 달래기 위한 수단의 하나였다. 즉 제사를 준비한 인간의 정성을 받아들여 각종 재해에서 백성들을 지켜달라는 일종의 호소였던 것이다.

제정일치 시대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제사라는 제도는 한 나라를 유지하는데 있어 큰 행사였다. 평안할 때는 평안해서 감사의 제사를 올렸고, 재난이 닥쳤을 때는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제사를 올렸다. 이를 거를 경우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 없기에 소홀히 할 수도 없었다. 제사를 관할하는 제사장이 온갖 전횡을 휘두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성경에도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이 신에게 제사를 드렸고,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하기도 했다. 심청전에서 심청은 아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기에 이른다. 서해 바다를 건너다니며 중국과 교역하던 장사치들은 바다 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올려야 했는데 심청이 인당수에 올리는 제사의 제물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제사는 신에게로 향하기 마련이다. 다만, 다른 종교와 달리 기독교에서는 제사라는 제도가 상당히 축소되었는데 이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림으로써 몸소 속죄양이 되었으므로 더 이상 번제가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뿌리에서 비롯된 유대교나 이슬람교에 비해 기독교가 비교적 현대적인 모습을 갖출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 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보기에 한국의 제사 풍속은 상당히 미개한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더구나 신도 아니고 죽은 사람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하니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우상숭배 운운했을 것이고 절을 거부하고 나아가 제사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순교자라며 칭송하기도 했다.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죽음을 불사한 것은 존경받아 마땅하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제사에 대한 부정은 한국 제사에 대한 오해와 한국인을 미개한 민족으로 보는 편협된 시각에서 비롯된 착오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제사는 죽은 사람을 신처럼 떠받드는 게 아니라 인사의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귀신이라는 존재를 믿는다는 게 문제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귀신은 성경에도 등장하니 그 또한 문제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서양에서 절은 신과 왕처럼 절대적인 존재에게만 하는 행위였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죽은 사람에게 절하는 행위를 우상숭배라고 단정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신이나 왕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절을 해왔다. 어른을 대하는 가장 큰 예절이었던 이유에서다. 기독교가 주장하는 대로라면 새해 인사인 세배도 우상숭배이므로 금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온 이후로 기독교 신자가 하나라도 있는 집에서는 제사 문제로 인한 다툼이 없는 곳이 없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절은 물론 제사 자체를 거부해야 진정한 신자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제사 금지는 더 이상 지켜질 필요가 없다. 더구나 가족 간에 의까지 상하게 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예수는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는데 가족에게는 그러지 못한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2 Comments

  1. ss8000

    2017년 1월 29일 at 6:59 오후

    제가 교회를 안 가는 이유가 바로 그 기에 있습니다.
    우리 형님 명색 안수 받은 목사님입니다.

    제사 지내는 걸 우상 숭배로 압니다.
    제삿날 집에 오는 건 둘째고 제사 음식 비스무리 한 건
    아예 먹지도 않습니다.

    차남이면서 조상 제를 지내는 내력입니다.
    조상님 벌초(알바를 쓰든 어쨌든)도 내가 합니다.
    도덕윤리를 떠나서 이게 할 짓입니까?

    한 때 신도가 천여 명이 넘는 교회에 십일조를 1.2위를 다투며
    내는 신도 였어요……
    아! 아니다. 이 정도 얘기 하다 보니 차라리
    본 썰로 하나 만들어야 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팀장님
    오늘 좋은 아니 훌륭한 안건 제출(?) 했습니다.

    • journeyman

      2017년 2월 1일 at 4:38 오후

      제사라는 제도가 이제는 시대에 맞게 변할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죽은 조상에게 복을 달라거나 화를 면하게 해달라고 비는 것은 부질 없는 일이니까요.
      고인에 대한 추모가 원래 제상의 기능이었다면 음식도 많이 할 필요 없이 추모 형식만 갖추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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