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미개한 풍속인 제사

제사

 

한국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복을 받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복을 받기 위한 종교와 벌을 받지 않기 위한 종교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즉 복을 주는 이과 벌을 주는 이가 같으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대교에서 시작된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현세가 아니라 내세를 위한 종교다.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나라에 쌓아두라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신도들은 현세에서 복을 받기를 원하고 현세의 재난에서 빗겨나기를 바란다. 성전에 헌금을 바치는 것도 내세에 쌓아두려는 목적이 아니라 현세에 복을 받고 현세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다.

복과 벌 중에서 더 간절한 것은 아무래도 후자다. 복은 받으면 좋고 못 받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나 벌은 안 받으면 고맙고 만일 받게 되면 큰일 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복보다는 벌이 더 크고 무섭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복을 위해서 비는 것보다 벌을 면하기 위해 비는 것이 몇 곱절은 더 간절할 수밖에 없다.

종교는 아니지만 제사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조상의 보살핌에 감사하고 은덕을 기리는 날이라는 말로 제사라는 제도를 포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보다 조상이 노해서 문제라도 생길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제사에는 정성을 다해야 하고 전국의 명당을 찾아다니며 묫자리를 보는 것이다.

죽은 조상이 신이 아니고서야 무슨 힘으로 현세의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칠까마는 혹시라도 정성이 부족하다 진노하여 후손들의 앞길을 막거나 더 나아가 해코지라도 할까 두려워 하는 것이다. 즉 제사를 거르지도 않았고 정성껏 준비했으니 ‘후손이 잘 되게 도와주세요’라는 의미보다는 ‘후손이 잘못되지 않도록 해주세요’의 의미가 더 큰 것이다. 제사가 아니라 미신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영험한 조상이라면 왜 명절 같은 특정한 날에만 찾아오고 차례를 지내는 장손 집으로만 오는 지도 의문이다. 무슨 광복절 특사도 아니고. 내가 죽어도 그런 신처럼 떠받들어야 할만한 조상이 된다는 말일 터인데 살아서도 없었던 신통력이 죽어서 생긴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

명절마다 일가족이 모여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 것은 장려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제사로 인해 특정한 사람들만 고생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차례를 지내려거든 서양의 포트럭 파티처럼 서로 조금씩 음식을 준비해 오거나 음식 준비 없이 고인들을 추모하는 것으로 대체해도 될 일이다. 조상이 원하는 것도 갈등 속에서 억지로 준비하는 차례상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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