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시촌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공부에 방해될까 봐 전화 한 번 마음대로 하지 못한 엄마(미경)는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지만 고시공부에 지친 아들의 목소리에는 짜증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수도요금이 지난달보다 많이 나왔으니 생활비 좀 넉넉히 보내달라는 말이었다.
혼자 공부하는 아들의 수도요금이, 그것도 일찌감치 학원으로 나섰다가 저녁에 들어와서 잠만 자다시피 하는 아들의 수도요금이 백만 원 넘게 나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방에서 미용실을 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하루 종일 머리 감기는 게 일인 미용실에서도 한 달 내내 써봐야 그보다 턱없이 적은 수도요금 고지서를 받는 이유에서다.
모르긴 몰라도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공부밖에 모르는 숙맥인 아들을 이용해서 잇속을 차리는 놈들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아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돈이나 부치라고 했지만 엄마는 서울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아니 아깝기는 하다). 잘못된 게 있다면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도대체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박지영 주연의 ‘범죄의 여왕'(The Queen of Crime, 2015)은 이처럼 아들이 전해온 믿을 수 없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누진제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뛰기 마련인 전기 요금이나 소액결제나 게임 아이템 구입에 사용되는 전화 요금이 아니라 수도요금이 백만 원 넘게 나왔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경우 대부분 세 가지 정도를 의심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관리소에서 농간을 부린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상수도 파이프가 터져서 물이 샌 경우(또는 계량기가 고장 난 경우)이며, 마지막 하나는 정말 물이 많이 필요한 일이 생긴 경우다. 유약한 아들을 대신해 엄마는 나름대로 추리와 수사를 진행해 나간다. 그러면서 하나씩 진실에 접근해 간다.
영화의 배경은 신림동 고시촌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하숙 형식의 고시원이 아니라 개개인이 따로 방을 얻어 사는 오래된 아파트다. 지내기에는 고시원이 낫겠지만 이런저런 간섭 없이 지내기에 적합한 형태일 것이다. 오래된 건물인 만큼 분위기가 칙칙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가 고시원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의 장르는 스릴러지만 적당히 코믹을 첨가해서 버무렸다. 음침해 보이던 개태 역의 조복래가 나중에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개같이 태어났다고 해서 개태란다). 또한 고시촌에 살면서 고시에는 관심도 없고 지나다니는 여자나 훔쳐보는 덕구 역의 백수장도 영화를 이끌어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의 결론은 뻔하게 흘러간다. 추리극에서 반전을 꾀하지 못하고 뻔한 결론으로 흘러간다는 것만큼 치명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단점을 코미디로 극복했다. 소름 끼치게 무서운 장면보다는 툭툭 튀어나오는 개그 코드가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코드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면 그다지 재미없는 영화라고 생각될 것이다.
박지영이라는 배우를 처음 본 건 SBS ‘오박사네 사람들’이라는 시트콤을 통해서였다. 그녀의 프로필을 보면 1989년 미스 춘향 선으로 데뷔한 후 같은 해 MBC 19기 공채 탤런트로 뽑힌 것으로 되어 있던데 정작 그녀를 알린 대부분의 작품이 SBS라는 점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이러고 보면 프로필이 정확한 것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이 영화에 대해 박지영은 처음으로 손익분기점이 신경 쓰였다고 한다. 마이데일리 인터뷰에서 “한낮에 영화를 보러 갔는데 몰입이 안 되는 거에요. 제가 관객들의 수를 세고 있더라고요. 하하. 그때 주부들을 공략하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 작품은 꼭 엄마들이 봐야 하는 영화입니다.”라고도 했다.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영화는 43,823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범죄의 여왕(The Queen of Crime, 2015)
스릴러 | 한국 | 103분 | 2016 .08.25 개봉 | 감독 : 이요섭
출연 : 박지영(엄마 미경), 조복래(개태), 김대현(아들 익수), 허정도(403호), 백수장(덕구)
김수남
2017년 5월 13일 at 9:36 오전
네,그런 영화도 있었군요.그 물 값이 왜 그리 많이 나왔는지 어떻게 풀어간 영화인지 궁금하네요.엄마가 시원 통쾌하게 파헤쳐 냈겠지요?
journeyman
2017년 5월 16일 at 3:59 오후
힌트를 드리자면 장르가 스릴러이고 결과도 그렇게 흘러갑니다.
산고수장
2017년 5월 14일 at 7:00 오후
영화를본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국제시장을 보고는 병원신세 지고 그후 거동이 불편하고
따라서 마음도 영화볼 마음이아니고.
또있습니다 이제는 약삭바른 머리로 가상해서 만든
드라마 영화가 보기싫어지네요.
이제 다되 가는생인가봅니다.ㅎ
수도요금이 백만원으로 설정해서 어찌꾸며서 사람들을 유혹했을까요?
정성들여서 보내주신 머그컵
잘받았습니다 요긴하게 잘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journeyman
2017년 5월 16일 at 4:01 오후
요즘에는 안방에서도 편하게 영화 볼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져서 굳이 극장을 가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극장에서 돈 내고 보기 아까운 영화도 많고 개봉한 후 바로 안방으로 찾아오는 영화도 많으니까요.
머그컵이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