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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699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흥행 보증수표라는 말처럼 허망한 단어도 없다. 수표라는 것은 현금을 대신하는, 그야말로 현금과 동일한 가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면 수표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수표가 아니라 어음에 가깝다. 수표는 바로 현금으로 바꿀 수 있지만, 어음은 수표와 달리 일정 기간 지급이 유예된다.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나중에 가봐야 안다.

하정우라는 이름에는 흥행 보증수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가 출연하는 영화는 무조건 믿고 봐도 된다는 표현이다. ‘추적자'(The Chaser, 2008)가 그랬고, ‘황해'(Hwanghae, 2010)가 그랬으며, ‘의뢰인'(The Client, 2011)이 그랬고,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가 그랬다. ‘베를린'(The Berlin File, 2012)과 ‘더 테러 라이브'(The Terror, LIVE, 2013)도 다르지 않다. 이들 영화를 선택한 이유 중에는 하정우라는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다른 영화들은 어땠던가?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 2008), ‘어떤 하루'(My Dear Enemy, 2008), ‘보트'(Boat, 2009), ‘러브픽션'(LOVE FICTION, 2011)과 같은 영화들의 저조한 흥행 실적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흥행 보증수표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가. 수표라기보다는 차라리 어음에 가까워 보이지 않는가. 그것도 부도어음.

하정우라는 배우에 대해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올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 중의 하나인 ‘군도'(KUNDO : Age of the Rampant, 2014)에 대한 감정 때문이다. 지난 7월과 8월에 개봉했던 한국영화 빅4(군도, 명량, 해적, 해무) 중에서 가장 먼저 개봉(7월 23일)했던 이 영화는 하정우라는 이름을 가장 먼저 내세우고 있는 작품이다. 그만큼 하정우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어떻던가. ‘역시 하정우’라는 감탄사가 나올만 하던가? 그의 이름을 믿고 선택한 보람이 있었던가? ‘천만에’였다. 오히려 악역인 조윤 역의 강동원이 더 빛나 보인다. 아니 하정우라는 배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강동원으로 시작해서 강동원으로 끝날 뿐이다. 하정우 영화라면서 실상은 강동원 영화였던 셈이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아무려면 어떠랴 싶었다. 하정우든 강동원이든 영화만 재미있으면 되지 않겠는가 싶었다. 문제는 그렇지도 못하다는 점이다. 스토리는 스토리대로 겉돌고, 배우는 배우들대로 겉돈다. 스타일은 그런대로 봐줄만 했으나 이미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들이다. 마카로니 웨스턴을 흉내내고 싶어한 듯 보이지만 그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KBS 2TV ‘추노’에서 이미 눈에 익은 장면들이다.

영화는 시대적인 배경을 설명하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그 나레이션이 영화 중간 중간에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할말이 많은 영화라는 말로 변명할런지 모르겠으나 그보다는 영상으로 말할 줄 몰라서 라는 느낌이 든다. 소설은 글로 말해야 하고 라디오는 말로 해야 하지만 영화는 영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모르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영상소설이라는 기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도 소설의 형식을 취할 수 있고 적절히 혼합하면 두 장르의 약점을 보완해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기도 하다. 이 영화도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는 하다. 책처럼 영화를 장(chapter)으로 나누어서 5장까지 제목도 달았다. 하지만 왜 그래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그저 겉멋 들어 보일 뿐이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이 영화는 하정우 영화다.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마케팅 단계에서 하정우를 중점적으로 내세웠고 관객들로 하여금 하정우라는 이름에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하정우 영화라고 하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무리가 따른다. 하정우라는 배우의 특색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다. 배역도 어색하고 연기도 인상적이지 못하다. 하정우에 대해 실망스러운 것도 그 때문이다.

반면 아직은 연기파 배우라기보다 얼굴마담 이미지를 벗지 못한 강동원의 선택은 신의 한 수에 가까워 보인다. 하정우가 도치라는 배역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도는 반면, 강동원은 조윤이라는 배역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도치 역이 반드시 하정우일 필요는 없겠으나 조윤 역은 강동원이 아니면 안 될 듯싶다. 연기파 배우 하정우의 굴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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