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밤
바다는 물빛이 서려 마루 옆에 가득하고
달빛은 산그늘에 부서져 침상을 둘러싸네.
마음 아닌 것이 없지만 보이기까진 인연이 필요할 뿐.
7/26/2010 戌時
여름 밤
바다는 물빛이 서려 마루 옆에 가득하고
달빛은 산그늘에 부서져 침상을 둘러싸네.
마음 아닌 것이 없지만 보이기까진 인연이 필요할 뿐.
7/26/2010 戌時
책임, 조국, 명예.
-‘끝나지 않은 전쟁 6.25’를 읽고
1982년 봄쯤으로 기억된다. 주택가의 꽃들이 아름다운 Virginia주의 Norfolk에 기항했을 때 The Mcarthur Memorial을 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2층에 한국에서 보내온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의 축소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20대 초반의 제복을 입고 혈기 왕성한 때라 George Patton 장군이나 Douglas Mcarthur 원수를 본받고 싶어 했었다. 특히 1951년 4월 19일 워싱턴 의회에서의 마지막 연설 장면은 인상적이었고 오랫동안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으며 삶이 어렵고 힘들 때 마다 혼자 되뇌이곤 했었다.
“I still remember the refrain of one of the most popular barrack ballad of that day, which proclaimed most proudly that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And like the old soldier of that ballad I now close my military career and just fade away. An old soldier who try to do his duty as god gave him the light to see that duty. Good bye.”
우리들은 시골에서 자랄 때 전쟁만화를 많이 보았고 아이들끼리 패를 짜서 전쟁놀이도 참 많이 했었다. 아마도 6.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향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6.25에 대한 단편적인 사실들은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지만 전체적인 사실을 개괄하고 있지는 못하고 오히려 외국의 기록 영화나 전기물을 보고 대체적인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남도현 선생님의 ‘끝나지 않은 전쟁 6.25’를 읽으면서 전체의 전쟁의 흐름이나 각각의 전투에 대하여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어서 아주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1978년 미국의 전기작가 William Manchester의 ‘American Caeser’의 내용을 요약한 1984년 6월호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한국전쟁과 맥아더 원수’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에 의하면 1950년 1월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행한 즉흥연설에서, 태평양에서의 미국의 방위선은 “알류산 열도에서 일본을 거쳐 류쿠열도로 이어진다.”고 밝힘으로서 공산측의 남한 침공을 유발한 점이 있고 1950년 3월 10일 미국 CIA는 “북한 인민군이 1950년 6월에 남한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측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대비가 이루어지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쉬운 점이 있다.
한국전이 발발한 지 4일째인 수요일 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동경에서 수원으로 날아와 서울에서 1.6 km 떨어진 산등성이에서 맥아더 원수가 한강의 “철교를 없애버려”라고 한 것이 한강의 철교와 인도교를 일찍 폭파한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인천 상륙 작전에서 미해병 1사단 5연대가 상륙한 적색해안은 실기사 때 미국 서부해안의 Portland, Oregon이나 Vancouver, Washington에서 밀을 싣고 와서 하역하던 곳인데 간만의 차가 심해서 Dock로 드나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한 구상이라고 생각된다.
대구에서 고향을 가는 시외버스를 타면 항상 다부동을 지나게 된다. 도로 옆에 다부동 전적비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기 위하여 여름에 미처 수습하지 못한 전사자의 시체가 부패해서 여기저기에서 터질 정도로 처절하게 싸웠다는 내용에 숙연해 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과 맥아더 원수’에서 밝히고 있는 바에 의하면 “맥아더는 곧 겨울이 닥쳐와 압록강이 얼어붙으면 중공군의 도강이 쉬워질 것을 우려해서 공격의 속도와 강도를 높이기로 결정”하였으나 미 8군과 10군단 사이로 잠입한 30만 중공군을 맞아 “현재로서는 새로운 적을 저지시키는 것은 ‘거의 실행불능’한 일이라고 보고함에 따라 미국은 유엔군을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시키는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하게 된다.”
1950년 12월 23일 8군 사령관인 워커 장군이 지프차 사고로 사망한 후 후임으로 육군참모차장인 매슈 리지웨이 대장이 한국으로 와 8군 사령관에 취임하고 ‘Hand in Hand, Shoulder to Shoulder’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전선을 촘촘히 연결한 상태로 서서히 적을 밀어 붙여 맥아더가 그토록 암담하게 예언했던 파국을 막는데 성공하게 된다.
한 가지 의문점은 ‘끝나지 않은 전쟁 6.25’에서는 당시 공산군 총사령관 겸 조중연합사령관이 ‘팽덕회’라고 밝히고 있으나 ‘한국전쟁과 맥아더 원수’에서는 ‘임표’ 휘하의 48만 4000명의 중공군 및 인민군이라고 밝히고 있어서 다소 혼란스럽다.
또한 본서을 읽으면서 화천호를 왜 ‘파로호(破虜湖)’라고 명명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한국의 평화를 위하여 싸워주신 미국과 16개 참전국의 모든 분들, 전진부대 청성부대 그리고 서해 5도를 점령한 해병대를 비롯한 모든 선배 용사들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한국전쟁과 맥아더 원수’에서 “1945년 소련군 보병부대는 스탈린이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것과 때를 같이하여 한반도 북단에 진주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전함 미주리함상에서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식이 끝난 후에야 한반도에 상륙했다. 미군이 한반도에 상륙 직후 수명의 준장들이 국방성 내의 한 사무실에 황급히 모여 “한반도를 분할해야 하는데 어디에서 자르면 좋을까?”하고 의논을 하는 자리에서, 극동지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대령 한 사람이 한국은 사회적 경제적 단일체로서 분할할 수 없는 곳이라고 이의를 제기했으나 장군들은 그래도 꼭 분할을 해야만 하고 그것도 그날 오후 4시까지 분할선을 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중국에서 근무하다 국방성으로 돌아온 ‘딘 러스크’라는 젊은 장교가 행정상 북위 38도 선을 따라 분할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했다.
군대가 없고 국력이 약하면 이렇게 된다. 다시는 이처럼 참혹한 재난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들은 결코 6.25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오늘이 바로 휴전협정을 조인한 날이었다.
감사합니다.
2010년 7월 27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이제는 흐릿한 기억의 강가에서.
– ‘7080 FM Goldern Pops’ CD를 듣고
이웃에 계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이사를 가시면서 정원에서 키우시던 금붕어 열 마리를 부탁하셨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고 두었던 어항을 청소하고 실리콘으로 다시 보수를 하면서 마당에서 월요일에 배송된 CD를 걸어 놓고 Juice Newton의 ’Angel of the morning’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도 오랜, 27년이 다된 그날 저녁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멕시코 태평양 연안에서 PEMEX 석유회사에 용선된 미국 Maritime Overseas Corporation 소속의 product oil carrier M/V PLUTO 선원들은 저녁이면 모두 Manzanillo의 술집으로 달려갔다. 일층은 Bar고 이층은 침실이 있었다. 기관사들 끼리 앉은 테이블에 20살쯤 된 여자아이가 목에 십자가를 달고 앉았다. 너무도 깔끔하고 얼굴이 맑아서 사귀어 보고 싶었다.
왜 이런 아이가 술집에 나와야 할까? 아직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름의 사연이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때가 20대 초반이었으니까 아직은 때가 덜 타서일까 나는 그냥 맥주를 홀짝이면서 멀거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때 Juice Newton의 ’Angel of the morning’이 흘러 나왔다. “There’ll be no strings to bind your hands, not if my love can’t bind your heart; And there’s no need to take a stand. For it was I who chose to start.” 특유의 흐느끼는 소리에 젖어 있을 때 건너편의 마음씨 좋은 1기사와 이층으로 그녀가 올라갔다.
나는 뭔지는 모르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만 생각했다. 그 후로 ‘아침의 천사’를 들으면 언제나 그날 저녁의 그 술집의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제는 그녀를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늙음과 함께 생긴 상처 때문일까? 이제는 그녀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두 번째 CD에 Paul Anka의 Papa는 70년대 고교시절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팝송이다. 가사가 비교적 쉽고 음이 경쾌해서 그랬던 것 같다. “Ev’ry day my Papa would work to help make two ends meet, to see that we would eat, keep shose upon my feet. Growing up with him was easy, time just flew on by, the years began to fly, he aged and so did I.”
고교 2학년 때 대구 교동 시장을 뒤져서 중고 SONY 녹움기를 샀다. 그때 7만 2천원이면 꽤 큰돈 이었다. tape에 녹음해서 들은 경음악 중에 ‘Sealed with a kiss’가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가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Tho we gotta say good bye for the summer, Darling I promise you this: “I’ll send you all my love ev’ry day in a letter, Sealed with a kiss, “Guess it’s gonna be a cold lonely summer. But I’ll fill the emptiness. I’ll send you all my dreams ev’ry day in a letter Sealed with a kiss.”
고교 시절 우리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가수 중에 우수 어린 모습의 인디언 혼혈의 Lobo(회색 이리)가 있었다. 나는 특히 ‘Stony’와 ‘I’d love you to want me.’ ’We’ll be one by two today’를 좋아 했었다. “When I saw you standin’ there. I ’bout fell out’ my chair, And when you moved your mouth to speak I felt the blood go to my feet. Now it took time for me to know what you tried so not to show. Somethin’ in my soul just cries, I feel the want in your blue eyes. Baby, I’d love you to want me the way that I want you, the way that it should be Baby, you’d love me to want you the way that I want to if you’d only let it be.”
모든 것이 부족하고 척박했던 그 시절 FM Pop Song 시간은 메마른 정서와 문화적인 갈증을 달랠 수 있었던 고대하던 시간이었고 막연히 전파 속에 흘러나오던 외국 문화에 대한 갈망과 동경은 결국 약 5년간의 해기사 생활을 하게 된 동기의 일부가 된 것 같다.
이제는 다시 의학을 공부해서 모교에서 교수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삶이 너무도 행복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지금처럼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당연하다는 듯이 향유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시간에 맞취 FM 라디오에 귀 기울이고 아나운서의 시작 멘트에 열광하던 그 시절을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그것은 우리들의 아련한 망각의 강가에서만 흐릿한 흔적을 남기고 있으리라.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2010년 7월 7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생활의 발견 (The Wisdom of Living)
아름다움은 20년의 결과이나 지성은 수억 겁의 과정이다.
우리들의 몸은 약 6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하루가 지나면 이중 5천억 개의 세포가 모습을 바꾼다.
그러므로 암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단지 조금 잘못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우리들은 수억 겁의 마음이 쌓여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결국은 마음일 뿐이므로
다잡아 찾아보면 그저 공할 뿐이라는 것을 체득하게 된다.
100701 巳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