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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들거나 시들지 않는 진정한 자아를 찾읍시다.

병들거나 시들지 않는 진정한 자아를 찾읍시다.

– ‘마음의 불을 꺼라.’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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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화사하고 맑은 봄바람에 창문을 열어 놓고 집사람이 해주는 석고 팩을 즐기고 해질녘에는 가족 모두 장군산 산책로를 거닐었다. 이제 벚꽃이 한창이고 개나리와 신록의 파릇파릇함이 돋보인다. 20여 년 동안 의학을 공부하고 나름대로 화두를 들어서 노스님께서 ‘지봉(智峯)’이라고 법명도 내려주셨지만 마음의 상처를 받고 어려워하시는 분들을 보면 별 도움이 되지 못해서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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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에는 조선일보에서 2월의 베스트리뷰어로 뽑혔다며 5권의 책을 보내 주셨는데 그중 한 권이 Brenda Shoshanna 박사가 쓰고 김 우종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마음의 불을 끄라.(원제: The Anger Diet)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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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암남 반도는 남쪽으로 길게 돌출해 있어서 산등성이를 기준으로 동쪽 사면과 서쪽 사면으로 나뉘어 져서 바다를 끼고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나는 동쪽 사면의 남동향의 완만한 언덕빼기에 살면서 아침이면 바다에서의 일출을 거실에서 즐길 수 있는데 저녁의 아름다운 을숙도의 석양은 산책길을 나서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산정에서 비가 오면 분수령의 사면을 따라 각각 다른 사면을 따라 흐르지만 결국은 하나의 바다에서 만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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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초반에 약 5년 정도 우리와는 세계관과 종교가 다른 서구 세계를 대충 둘러보면서 어느 정도 적응하기는 했지만 현재의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경제 사회발전과 그에 따른 혼란을 들여다보면 동서양의 문화적 충돌의 격랑과 그에 따른 아노미(anomie) 현상 그리고 일탈과 양산되는 스트레스는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하고 원만한 삶을 어렵게 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인 다섯 명 중 한 명이 심각한 ‘화’ 증상을 겪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화를 24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하고 ‘삶에서 실제로 그 화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하는 실제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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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분류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의과대학 재학시절, 심리학이나 행동과학 그리고 정신과학을 접했을 때의 충격들을 독자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겪을 것 같아 다소 걱정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담을 받아들이고 조금 더 읽다보면 정신세계에 대하여 새로운 시야가 열리고 그에 따라 지금까지는 막연하게만 느끼고 있던 ‘화’나 불안 불만 등의 정체와 그 바탕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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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저작이 더욱 매력적인 점은 지금가지 고민하여 왔던 선(禪)적인 깨달음의 즐거움과 효용을 일반인들의 ‘화’와 불안 그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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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저자 자신이 동양의 선 수행을 오랫동안 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현대의 삶에서 충돌을 빚고 있는 종교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를 원만하게 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것이 매우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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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람들이 아침마다 몸단장을 하고 집을 나설 준비를 하지만 마음을 깨끗이 하고 가슴을 사랑으로 채우는 일을 게을리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를 잡거나 맹목적인 반응이 일어나기 전에,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내적인 근육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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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 수 없는 불안과 ‘화’를 느끼는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을 일독 하시기를 권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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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5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환상에서 자유롭기 위해 우리들은 여행을 한다.

환상에서 자유롭기 위해 우리들은 여행을 한다.

-어린왕자 만나기와 떠나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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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겨울의 끝을 알리는 서설이 내려 하루 종일 마음이 들떠 있었다. 부산에서는 눈이 귀해서 겨우내 한 번도 눈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쌓일 정도의 눈이 내리면

언덕과 비탈길이 많은 도로는 마비가 되어 아이들은 휴학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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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왕자를 처음 만난 것은 그때가 고교 시절이었으니까 아마도 1975년 전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때였으니까 그때 받은 신선한 충격은 오랫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은 채 오랫동안 사막에 대한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Mexico와 카리브 해에서 승선근무를 할 때에는 멕시코의 만사니요(Manzanillo)와 구아이마스(Guaymas)의 사막 지대와 Venezuela의 아무아이 베이(Amuay Bay)의 해변에서 붉은 색이 고운 사막의 여명을 맞이한 적이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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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도 1997년 여름에는 터어키 카파도키아의 한낮의 따가운 햇살아래 먼지가 풀풀 날리는 흙길을 헤매기도 했으며 2001년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Bukhara)의과대학과 본교가 자매결연을 맺게 되어서 본교 대표로 방문하게 되었을 때 약 2주간의 여행에서 이틀 정도의 여유가 있어서 홀로 차편을 마련해서 카라쿰 사막을 여행해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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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어린왕자를 만나고 떠나보냈던 쌩떽쥐베리의 심정을 이해하고 싶었고 혹시나 ‘나도 어린왕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한 허황한 꿈이 어느 날 운 좋게 내게 현실로 다가왔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조금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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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약 35년이 지난 지금, 피그출판사의 어린왕자를 읽으면서 쌩떽쥐베리는 자신의 내면화된 체험을 바탕으로 이글을 썼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며 아울러 10여년 가까이 혼자서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어떤 경험을 드러내어 놓을 수 있는 용기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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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산책길에서 만나던 동양철학을 공부하신 분이 있었는데 나도 한문을 좋아하던 터라 우리는 곧 친구가 되었으며 집에 방문해서 여러 시간동안 서로 토론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1996년 겨울 어느 날 주변에 견성을 하신 노스님이 계신다면서 같이 가서 뵙자고 해서 엉겁결에 따라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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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배를 드리고 문학이야기를 하다가 석공을 마친 후에 노스님께서 갑자기 나를 보시면서 “자네가 앉은 자리가 어딘가?”라고 대뜸 물으셨다. 차를 놓고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갑자기 살얼음판 같은 냉기가 흘렀고 나는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몰라 오랜 침묵 속에 모골이 송연해져서 등줄기로 식은땀을 흘러내리고 있었다. 스님께서는 다시 웃으시며 ‘정전백수자(廷前柏樹子) 화두를 건네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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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그 경험은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으나 바쁜 일상에 밀려서 곧 잊어버리게 되었다. 같이 갔던 지인도 그 후에 서울로 이사를 가셔서 만나지 못했다. 이 년이 지났을 즈음 어느 가을날 다시 그 암자를 찾았을 때는 중년의 비구니 한 분이 절을 지키고 계셨다. 차를 한잔 받고 노스님의 안부를 묻자 지난 겨울에 열반하셨다고 하시면서 내가 여기에 온 연유를 밝히자 비구니 스님은 어려워 하시면서도 ‘노스님의 유고집이 있는데 한문을 번역해 주실 수 있겠느냐?’고 물어 오셨다. 나는 평소에도 한문 공부하기를 좋아하던 터라 그러마고 덥석 응낙을 했다. 스님의 열반 일주기를 기념으로 조그만 문집을 내고자 하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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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후 번역한 자료를 가져다 드리고 나서 또 연락이 와서 사직동 사직 운동장 뒤의 관음사(觀音寺)라는 절에 스님께서 몸소 가르치시던 제자 스님께서 계신데 마침 실명을 하셔서 글을 구술할 수밖에 없는데 스님의 찬(讚)을 같이 좀 받아 왔으면 좋겠다는 부탁이었다. 전철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가는데 이전의 스님의 재가제자였던 문처사라는 분이 ‘정전백수자’ 화두를 내놓는데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있는 그 자리네요’라고 답변을 마치자 마음의 바다에서 해가 훤하게 떠오르면서 모든 사람마다 그 해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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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험은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께서 생전에 물으신 ‘앉은자리’는 그 후에도 계속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여행 때 고려대학교 물리학교수로 계신 분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Scientific American’을 번역해서 월간으로 출판을 하고 있는데 마침 ’The Hidden Mind’라는 별책을 단행본으로 번역을 하고자 하는데 맡아 주면 어떻겠냐는 부탁을 받고 그러마고 승낙을 하고는 미루고 있다가 2003년 여름에 번역을 시작 할 즈음에 여름 휴가를 맞아서 태종대 온천의 노천탕에 누워 있다가 깜빡 잠이 들려는 찰나에 스님께서 물으신 말뜻을 깨닫고 “전생의 기억도 단지 마음의 문제일뿐이구나”하고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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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표현된 모든 것은 사실에 가깝기는 하지만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단지 내면의 체험에만 존재한다. 그것을 글로 표현했을 때는 이미 온전한 하나가 아니라 반쪽이 되고 만다. 물질이 생겼다면 어딘가에는 반물질을 숨겨두고 있다. 우리가 잘 찍었다고 내어 놓는 사진일수록 모두가 그만큼 더 사실과 동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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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이 온전하다면 어린왕자는 사하라 사막에서 불시착한 저자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씌여졌으며 1943년 미국에서 발표되었다. 이번에 다시 어린왕자를 읽으면서 나는 쌩떽쥐베리의 체험에서 우러나고 있는 글의 깊이와 그 체험을 드러내는데 있어서의 저자의 고민에 깊은 공감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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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면 저쪽 수평선에 걸려 있는 대마도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의 모습을 하고 있고 봄이면 뜰에 채소와 꽃씨를 뿌려놓고 온 봄이 다가도록 조바심을 내면서 싹이 트기를 기다리고 떡잎이 나면 혹시 잡초는 아닐까 다시 전전긍긍하게 된다. 산책로에는 양들은 아니지만 귀여운 염소가 있고 해질녘이면 언제나 아름다운 을숙도의 석양이 있다.

앞산의 큰바위얼굴을 보며 어느덧 그 얼굴을 닮아간 노년의 어어니스트처럼 나도 조금은 어린왕자를 닮아서 주변의 평범한 일상에서 언제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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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소년소녀들이 그러하였지만 너무도 아름답고 시적인 이 번역을 사람들은 칭찬하고 감탄한 후에 흩어져서 바쁜 일상에 파묻혀 잊어버린다. 그 누구도 어린왕자가 우리들의 내면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그저 ‘그래, 어린왕자와 장미와 여우와 뱀과 조종사가 있었지. 참 아름다운 이야기였어. 감미로운 만남과 이별이 있었지. 하지만 그것은 저편 건너 사막에 있었던 동화였을 뿐이야.’라고 되뇌면서 내면에서 잠자고 있는 어린왕자를 깨워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다시 그 왕자를 떠나보내고 다시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이 다시 쌩떽쥐베리를 안타깝게 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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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1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