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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대하는 지혜와 용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대하는 지혜와 용기

 

-브레네 브라운의 ‘완벽을 강요하는 세상의 틀에 대담하게 맞서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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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리뷰를 쓴지 어느덧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참으로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어제 이 책의 부록으로 실려 있는 ‘나는 이렇게 연구했다.’를 읽으면서 서두에 나와 있는 에스파냐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 Antonio Machado)의 시 한 구절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Caminante, no hay camino, se hace camino al andar.”

 

나그네여, 길은 없다네, 그대가 걸어 갈 때 비로소 길이 만들어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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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에스파뇰을 해석하기 위하여 서가에서 사전을 꺼내 들었다. 문득 옛 생각이 떠올라 안쪽 표지를 펼치니 1985년 3월 1일이라는 날짜와 서명이 있다. 5 년간의 외항선 기관사 생활을 마치고 다시 의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수험 준비를 하면서 제2 외국어를 에스파뇰로 하기로 했었다. 그전에 2년 정도 멕시코와 카리브 해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다소 보탬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올해로 꼭 28년 전의 일이었고 그 오랜 여정의 한 모퉁이에 모교의 약리학교실 교수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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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집사람이 근무하는 영도의 병원 앞에서 가족 모두 점심을 먹고 태종대로 산책하러 가면서 한국해양대학교 옆을 지나게 되었다. 딸아이에게 “저 해양대학을 갈 생각으로 부산에 왔었고 그때 내가 처음 바다를 보았다.”고 말하였다. 그때가 1977년 겨울이었다. 그러한 인연으로 시작된 약 5년간의 해기사 생활을 마치고 1987년 봄에는, 이제 모교가 된 송도의 고신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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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참으로 파란만장한, 고뇌와 좌절과 형극의 길이었으나 정말 보람 있고 즐거운 나날들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었던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불완전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감싸 안고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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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두에 소개된 내용이다.

“취약성 그것은 약점이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감수하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감정을 타인에게 노출한다. 따라서 우리에겐 자신의 취약성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용기가 생기고 삶에 대한 목적의식도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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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우리들은 자신과 타인을 비교해 보고 스스로 열등감이나 수치심에 빠져서 괴로워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보려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회피하거나 또는 상처를 덮어 두고 제대로 근본적인 문제를 끄집어내어서 해결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내면적으로는 결핍감과 불만이 쌓여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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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러한 현대인들의 문제점들, 상심과 배신 열등감과 수치심등의 내면에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들에 대하여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를 총 정리한 것으로서 우리들이 숙명적으로 피해 갈 수 없는 많은 사회생활과 개인의 문제들에 대하여 매우 섬세하고 친절하게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으며 자신의 오랜 연구 경험을 매우 진솔하게 기술하고 있어서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을 연구하시는 분들에게도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매우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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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도입된 미국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연설 ‘공화국의 시민’에 등장하는 한 구절이 매우 인상적이다.

“…진짜 중요한 사람은 경기장에 서 있는 투사입니다. 그는 얼굴이 온통 먼지와 피땀으로 범벅이 되도록 용맹하게 싸우다가 실수를 저지르고 단점도 드러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노력하고 있다면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단점 또한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단한 열정으로 온 마음을 다해 싸웁니다. 성공하면 다디단 결실을 맛볼 것이요, 설령 실패한다 해도 적어도 ‘대담하게 맞서다’ 쓰러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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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주 전쯤 작은 아이의 운동회가 있었다. 5학년이 다 끝나갈 무렵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이는 1학기에 거의 매일 손들고 무릎꿇기나 걸상 들고 있기 등의 벌을 받았는데 “자신은 다른 관점에 대한 질문을 하거나 눈치가 없이 굴었다고 왜 사소한 일로 벌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또 손을 들어도 결코 발표를 시켜 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는 별 탈 없이 5학년을 마쳤고 이제 6학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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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온 마음을 다하는 육아 성명서’의 한 구절이다. “우린 함께 울고, 두려움이든 슬픔이든 함께 맞설 것이다. 진심으로 너의 고통을 덜어 주고 싶지만, 대신 곁에 앉아 고통을 느끼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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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의학과 1학년 약리학 강의가 시작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자신과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그리고 커가는 아이들과 가족들을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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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요사이 논문 대필이나 표절 등이 심심치 않게 지면을 달구고 있는데 이 책을 꼼꼼히 읽어 보면 연구의 주제를 정하고 진행해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연구주제를 수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학문적인 성과와 발전이 있는 연구를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매우 진솔하고 심도 있게 기술하고 있어서 많은 연구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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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3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원제: The Tao of Physics)’을 읽고 중

 

나는 3년 전부터 이 글을 대해 오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우주의 바닷가에 섰을 때와 같이 성성하게 밀려오는 지적 자극과 생각의 꼬리들, 끝없는 사고의 모험과 낭만과 환희를 가져다주었다.

10년 전 처음으로 미국에 발을 디뎠을 때, 물질문명의 웅대함과 현란함을 대하면서, 나는 신호등만 외로이 반짝이는 공허한 밤거리를 거닐면서 ‘5천년 동안 과연 동양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하는 문제로 괴로워했다.

그리하여 나는 동양사상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불교의 선종, 그리고 노장사상에 대하여 나름대로 공부를 하게 되었고 또한 물리학을 좋아해서 공부를 하면서 지난 세월 동안 간절히 추구해 오던 그 무엇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으며 그 동안 틈틈이 쌓아 왔던 지식의 파편들이 동서양의 시공을 넘나들며 아름다운 조화와 통일을 형성해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단지 유감스러운 것은 서양의 양식 있는 지성들은 동양의 지혜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반면 우리 주변의 젊은이들은 아직까지 어쩌면 황혼녘의 아름다움처럼 덧없는 서구 대중 소비문화의 매스컴과 광고의 홍수 속에 불어만 가는 물욕과 갈등으로 자신의 내면은 돌아보지 못한 채 그들의 외양만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모양새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으로 착잡하다.

 

 

-제6호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교지 해오라비(1989. 2. 19. 발행)에 발표한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원제: The Tao of Physics)’을 읽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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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고양이가 튀어 나오리라.

책에서 고양이가 튀어 나오리라.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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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을도 깊어 뜰에는 해국의 보라색이 아름답고 자목련 잎이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하였으며 모과의 푸른 빛에 노란 기운이 번지기 시작한다. 아직도 한쪽에선 푸르디푸른 잎 사이로 하얗고 앙증맞은 꽃을 피우고 조그맣고 예쁜 풋고추가 달리는 반면 한쪽에선 고추들이 빠알갛게 익어가고 있다. 지난 수요일에는 출장 갈일이 있어서 역으로 향하던, 새벽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차창의 풍경에는 백화점의 성탄절 장식을 하는 듯 크레인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었고 그 옆에는 2012년형 SM 5를 선전하는 현수막이 수은등 아래서 빛나고 있었다. 역 앞 광장에는 일찍 잠을 깬 비둘기들이 먹이를 쪼고 있었고 그 뒤로 몇몇 노숙인들이 해장술을 하는 듯 떠들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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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선생님의 글은 이전에도 경제학이나 주식과 관련된 책을 읽었던 적이 있어서 문체나 글의 전개가 비교적 익숙한 편이다. 단지 그때는 단순히 받아들여서 소화시키는 입장이었던 반면에 이제는 다소 세월의 때가 묻어서 일까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떠오르는 생각의 편린들이 많아서, 그리고 또 이 책이 주로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지난 6년간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학부모, 선생님들과 필자가 나눈 대화의 기록”이라고 하고 또 이미 이 책도 이전의 책들처럼 서점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어서 즐겁게 우리 아이들에게 건네주면서 몇 마디 덧붙이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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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자아 찾기,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 시간활용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매우 친절하고 설득력 있게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지적들은 지금 교정에서 커가는 아이들의 태도나 행동들을 보면서 매우 시의 적절한 가르침이라는 공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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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고교시절이 있었고 입학 초기에 쇼펜하우어와 니이체를 탐독했었고 많은 감탄도 했다. 그러나 서양 철학의 문제는 수와 언어를 사용한 사유로서 결국은 언어와 수에 갇히고 만다는 것이다. 이 책 297쪽에서 298쪽에 인용되고 있는

“우주론자들은 우주는 빅뱅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는데, 그럼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이 질문의 답은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다. 빅뱅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은 빈 공간, 즉 단조로운 진공상태의 공간만 존재했다는 뜻이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시간만 존재하는 그런 공간을 상상해야 한다. 소위 영겁의 시간만이 존재하는 그런 상태다. -중략- 그때 빅뱅 이전의 영겁의 시간 자체도 지금 시간의 개념으로 볼 때는 아무런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Robin Le Poidevin, The Discovery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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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는 시간이란 정보가 전달되는 속도의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겉보기의 값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말 시간도 존재하지 않고 단조로운 진공상태의 공간만 존재했을까? 그렇지 않다. 빅뱅이 없었다면 시공간도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허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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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253쪽에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시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시공간 자체가 중력과 반중력의 평형 위에서 역동적인 곡면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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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253쪽에 “청년에게 예의가 필요한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저자는 “지금 우리시대는 예의의 중요성이 완전히 경시되어 인내심과 자제력을 기를 수단을 상실해버렸다.”고 탄식하고 있다. 너무도 뼈아프고 가슴을 찌르는 지적이다. 요사이 아이들은 스승을 존경하지 않아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스승이 학생 눈치를 보고 학생이 스승을 우습게 아는데 어떻게 교육이 이루어 질수 있겠는가? 그럼 그것은 학생들만의 잘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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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선 핵가족을 구성하면서 기본적인 예의를 배우기보다는 어리광과 과잉보호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촌지 몇 푼 갖다 주면서 우습게 보는 부모로부터 스승을 우습게 보는 법을 배웠으며 일부의 스승도 스스로 노동자가 되었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돈 몇 푼에 내신 성적을 조작하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은 학위 장사를 하고 그도 저도 안 되면 조기 유학이다 뭐다 해서 현대판 이산가족이 되고 그쪽 삶에 적응된 가족들은 돌아오지 않겠다고 고집피우고 그러다 시민권 얻겠다고 협의이혼한 후에 그쪽 시민권자와 다시 계약 결혼하는 요지경이 되었다. 교육감이라는 분은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학생 권익을 외쳐서 교정은 지금 난장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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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세 시대의 패러다임 이해하기”에서 ‘추격과 질주의 세대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기술하면서 “당대의 관점에서 기성세대는 성공의 경험을 말한다. 경험은 무서운 것이다. 세상의 모든 주의 주장가운데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만큼 강고한 것은 없다. 기성세대는 헐벗고 굶주리던 우리가 이만큼 성장한 배경에는 일사분란하고 획일적인, 소위 ‘국론통일’로 상징되는 일체화된 질주만한 것이 없다고 체험적으로 믿는다. 부모는 자식에게, 국가는 국민에게, 기업은 노동자에게 이 체험을 강요한다. 글로벌 기업이라고 자랑하는 한국 기업들이 지금도 신입사원을 데리고 눈 내린 태백산을 오르거나 해병대 극기 훈련에 참여하면서, 그것을 단합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그런 사고의 산물이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기성세대라는 것이 저자의 세대를 말하는지 지금 70대를 넘은 아버지 세대를 말하는 지는 불확실하나 50대인 나의 입장은 이러하다. 나는 1977학번이나 의과대학을 10년 늦게 입학하여 나보다 10년 정도 젊은 학우들과 의예과 공부를 시작해서 1987년 1학기는 조용했으나 6월부터 몇 년 동안은 학사 일정이 제대로 진행된 적이 없었다. 모두 거리로 달려 나가거나 동맹 휴학이다 시험거부다 해서 학기 중에는 데모하고 방학 때 몇 자 공부하다가 기말시험치고 추석 끝날 때쯤 2학기 시작해서 또 데모하고 제대로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밤에 독서실에 책을 쌓아 놓고 공부하면 그 책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했으니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야비하고 무모할 수 있는지 실망스러웠다. 그들이 지금의 40대중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 고생도 조금은 했지만 아직 아버지 세대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들은 초가집 흙바닥에 시멘트 포장지 바르고 살았다. 비판은 좋다. 그러나 너무 세태에 영합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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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이들 토익이네 토플이네 그렇게 점수가 높다는데 약리학교재를 공부해서 발표하라고 해보면 교단에 서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 학생이 부지기수다. 의과대학 입학한 수재들이 그 모양이다. 연구 과제를 주면 해결은 못하고 하지 못한 변명이나 핑계만 늘어놓기 일쑤다.내가 느끼기에 같이 공부한 지금 40대, 일부이긴 하지만 자기 말에 책임질 줄 모른다. 그리고 1996년 전후로 MS window 95가 보급되면서 컴퓨터 세대와 컴맹 세대가 갈라졌고, 이제 은퇴를 앞둔 친구들을 만나보면 모두 하나같이 자기 살만큼은 되었는데 그동안 젊은 시절부터 상사에게 어깨 너머로 눈치 보며 배우고 익혀왔던 know-how는 하나도 전수를 못해줬다고 한다. 왜냐고 물으면 젊은 사람들이 모두 자기보다 더 똑똑하고 예전의 자기들처럼 배우고 싶은 열정이 없단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그저 편하고 즐거우면 그만이고 의무나 책임보다는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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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너무도 훌륭하다. 저자가 인용한 논어 술이(論語 述而)편의 한 구절 “열정이 끓어오르지 않으면 가르치지 않고, 표현하려고 더듬거리지 않으면 말을 거들어 주지 않는다. 하나를 가르치는데 세 개를 깨우치려 하지 않으면 더는 가르치지 않는다.”정말 공감하는 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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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한마디 더 보탠다면, 저자는 ‘학과 습이 병행되어야 진짜 공부다’에서 이 책의 276쪽 ‘깨달음이 있어야 진짜 공부다’라는 글에서 “‘진리를 마음에서 구한다.’는 말이 이 글의 절정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정말 저자는 마음을 보고나서 이런 글을 쓰는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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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의 달이 손 안에 들어 올 때는 어떠한가? 그것을 체득했다면 저자 스스로 그려 둔 것처럼 책에서 배가 손 안에 들어올 것이고 고양이가 책에서 튀어 나오리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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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30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모든 눈물은 기록되며 헛된 수고는 없다.

모든 눈물은 기록되며 헛된 수고는 없다.

‘이건희의 서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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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여름 북경에서 열리는 국제약리학술대회(IUPHAR)에 참석차 중국을 방문하면서 호남성(湖南省)의 장가계(張家界) 관광을 하게 되었다. 7월 1일 정오쯤 십리화랑(十里畵廊)을 둘러보고 난 후 이동한 금편계곡(金鞭溪谷) 입구에서, 흑룡강성 출신의 조선족 가이드가 옆에 있던 돌산의 감실(龕室)처럼 생긴 구조물을 가리키면서 “중국에는 장량(張良)의 묘라고 알려진 곳이 200여 곳이 있는데 이곳도 그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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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패왕 항우를 멸하고 한나라의 고조가 된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을 초왕에 봉했으나 후에 역적으로 포박 당하자 한신은 분개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좋은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토사구팽, 兎死狗烹), 하늘 높이 나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은 곳간에 처박히며, 적국을 쳐부수고 나면 지혜 있는 신하(臣下)는 버림을 받는다고 하더니 한나라를 세우기 위해 분골쇄신한 내가, 이번에는 고조에게 죽게 되었구나.”하고 탄식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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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본 장량은 후에 산천을 떠돌며 몸을 숨기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한나라 명문 출신으로, BC 218년 박랑사(博浪沙: 河南省 博浪縣)에서 시황제(始皇帝)를 습격했으나 실패, 하비(下邳: 江蘇省 下邳縣)에 은신하고 있을 때 황석공(黃石公)으로부터 태공병법서(太公兵法書)를 물려받은 이야기(네이버 백과사전 참조)를 그때 가이드로부터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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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리뷰를 쓰게 된 ‘이건희의 서재’의 서두에 나오는 장면이다.

저자는 장량처럼 자기 삶을 바꿀 수 있는 책을 얻기 위해서는 “책을 얻을 수 있는 태도와 알아볼 수 있는 눈과 그 책으로 자신을 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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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태어나 글과 책이 귀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뼈져리게 느끼며 자라서 일까? 아직도 아이들이 낙서한 종이조차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게 된다. 또한 고교시절부터 부모님의 슬하를 떠나 고독한 밤과 밤을 지새우며 번민 속에 지내야 했고 홀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고 처리해야 했던 지난날의 경험들을 돌이켜 보면서 어린 시절부터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겪었을 이건희 선생님의 삶과 그로인해 형성된 삶의 양식에서 많은 교훈과 위로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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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독서의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평소에 인식하고 있던 자신의 문제나 습관들과 같은 생각이나 모습을 한 사람을 책 속에서 만나면 쉽게 공감이 가고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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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나온 장량이나 한신의 삶이나 이 책에서 인용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을 보면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교언영색이나 비굴한 변명으로 엮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몸소 겪어서 체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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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에서 풍기는 통속적인 관심 이상의 깊이와 삶의 처절한 진리를 매우 솔직하고 설득력 있게 기술하고 있으며 특히 약 5년간 외항선의 기관사로서 해상근무를 하고 다시 의학을 공부했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지금도 전선의 누전이나 배관의 누수, 온수 파이프의 손상, 벽의 균열, 순환펌프의 교체 등을 수리공을 부르기 보다는 스스로 수리하고 해결하기를 즐기는 처지에서 보면 이건희 선생님의 삶과 행동방식에 깊은 공감과 동지애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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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일수록 자신을 존중하라. 오직 스스로의 힘만 믿으라. 밑바닥부터 시작하라. 화이부동의 길을 가라. 기록은 기억을 보장한다. 주도권을 장악하라.

이 모든 것이 단순한 허장성세가 아니라 오랜 실천과 인고 속에서 배어난 삶의 지혜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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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갈하는 것 같다. “배낭을 메고 일면식이 없는 이방의 거리를 헤매어 보라. 홀로 일엽편주를 몰고 대양의 폭풍 속을 지나가 보라. 그리고 산더미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문제들을 몸으로 부딪쳐서 스스로 해결해 보라. 장량처럼 되지 못할 재목이라면 이 책을 들지 말라.”

그리고 한마디 더 보탠다면 “정말 삼성이 미래를 생각한다면, 삼성에 bioengineer가 몇 분이나 계시는가?” 묻고 싶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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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7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뜻의 아름다움은 마음의 여백에 있다.

뜻의 아름다움은 마음의 여백에 있다.

‘명상을 위한 마음의 등불’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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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무르익어 여명 속의 뜰에는 풀벌레 소리가 영롱하고 새들도 흥에 겨워 지저귐이 요란하다. 색동호박의 어린 싹들은 어느덧 이층 베란다를 향하여 줄기를 뻗어 올렸고 수반에서 자라던 올챙이는 벌써 앞다리가 나와서 아이들은 개구리가 되면 뜰에다 내놓기로 한 약속 때문에 조바심을 내는 눈치다. 해질녘의 숲 속은 귀뚜라미 소리도 간간히 들려서 가을 또한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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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겨울 친구를 따라 단양의 한 산사를 찾아서 며칠 동안 수행을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석공을 마친 후 좌선을 하고 있는데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짐승처럼 쫒기는 삶을 살지 말라.”는 한마디의 말씀이 그대로 뇌리에 깊숙이 꽂혔다. 심연의 밑바닥을 들여다 보던 적적한 상태라 비수처럼 날아든 그 한마디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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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유강진 선생님께서 낭독하신 ‘명상을 위한 마음의 등불’을 받아서 틈날 때마다 듣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마음에 와 닿는 한 장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두 장의 CD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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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은 거기서 일어나니.

탐욕은 거기서 일어나니 귀나 눈을 단속하지 않으면 탐욕은 거기서 일어나나니 이것이 고통의 종자이고 거기서 냄새나고 액이 새어 흐른다.

수행자로서 닦아 익혀야 할 것은 잘 설해진 성자의 길이거니 여덟 가지 다른 길을 깨달아 알면 두 번 다시 윤회하지 않으리라.

욕심은 물거품처럼 허망하다. 욕심이란 더럽기가 똥 덩이 같고 욕심은 독사 같아 은혜를 모르며 욕심은 햇볕에 녹는 눈처럼 허망하다.

욕심은 예리한 칼날에 바른 꿀과 같고 쓰레기 터 속에 꽃이 피듯 욕심은 겉으로만 그럴 듯하게 보이며 욕심은 물거품처럼 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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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번민은 사라지리라.

애욕아 나는 너의 근본을 아노라. 뜻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생기나니 만일 내가 너를 생각하지 않으면 너는 나에게 있을 수 없노라.

애욕이 있어 번뇌가 생기고 애욕이 있어 두려움도 생기나니 애욕을 버려 자유로우면 두려움과 번민은 사라지리라.

처음에는 달다가 뒤에는 쓰디쓴 과일처럼 애욕 또한 그와 같아서 뒷날 지옥 고통을 받을 때에는 한없는 세월 동안 불에 타리라.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탐욕의 포로가 되어 피안의 기쁨을 찾지 못하고 재물 쌓는 것만을 즐거움으로 아니, 남들을 해치면서 자기 또한 얽어매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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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열여덟 줄 정도의 글이지만 반야심경의 지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깊이와 자비의 절절함이 느껴진다. 누구든 젊은 시절 한때의 사랑의 질곡에서 허우적거리던 기억을 갖지 않은 사람은 드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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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쉽게 말하지만 과연 그 내포(connotation)를 체득한 선지식이 얼마나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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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지 이 한 장의 말씀에 담긴 공덕과 가피가 무한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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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7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