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2일. 인천에서 두산과 SK가 승부를 벌였다. 이날 양 팀의 선발 투수는 장원준과 김광현.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날(4월 24일) 좌완 통산 100승을 기록한 선수들이었다. 다만 경기 시간이 달리 2시에 경기를 치른 김광현이 역대 세 번째, 5시에 경기를 치른 장원준이 역대 네 번째 좌완 통산 100승을 달성한 투수로 기록되었다.
두 선수 중에서 통산 102승을 먼저 달성한 쪽도 김광현이었다. 선취점을 내주기는 했으나 7이닝을 2실점으로 막아내면서 승리 투수가 될 수 있었다. 반면 장원준은 6이닝 4실점(3자책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통산 100승도 김광현에게 먼저 빼앗긴 장원준은 102승마저도 뒤지면서 당분간 김광현의 그늘에 머물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리고 두 선수가 나란히 선발로 출전한 18일. 장원준은 잠실에서 기아를 상대하고 김광현은 인천에서 롯데를 상대했다. 김광현이 6.2이닝 동안 119개의 공을 던지며 피안타 6개와 사사구 3개로 3실점(2자책점) 하는 동안 장원준은 5.2이닝 동안 88개의 공을 던지면서 피안타 6개와 사사구 5개로 3실점 했다. 5회에는 김주형과 황대인에게 백투백 홈런까지 얻어맞았다.
비슷한 경기 내용이었으나 그 결과는 달랐다. 김광현은 1:3으로 뒤지고 있던 7회초에 마운드를 전유수에게 넘긴 반면 장원준은 6:3으로 앞서고 있던 6회초 윤명준에게 공을 건넸다. 김광현이나 장원준 모두 똑같은 3점을 허용했지만 김광현은 패전 요건에 해당했고, 장원준은 승리 요건에 해당했다.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 없었다.
더 기가 막힌 건 그 이후다. 김광현이 마운드를 내려가자마자 7회말 SK는 곧바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무사 만루에서 7번 타자 최정민 대신 타석에 들어선 최승준이 비거리 115m짜리 그랜드 슬램을 터트린 것이다. 1:3이던 경기는 순식간에 5:3으로 뒤집어졌다. 김광현이 한 타자만 더 처리했더라면 통산 103승을 가져갈 수도 있었다.
2사 1-2루 실점 위기에서 공을 건넨 장원준의 경우에는 달랐다. 장원준이 내려간 후에도 두산은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갔다. 6회말 1점, 7회말 4점, 8회말 4점 등 9점이나 더 추가했고 6:3이었던 경기는 15:5까지 벌어졌다. 장원준이 타선의 지원으로 웃을 수 있었다면, 김광현은 그럴 수 없었던 날이었다. 그로 인해 두 선수의 통산 기록은 똑같이 102승이 되었다. 올 시즌 성적도 5승으로 같다.
일정에 변경이 없는 한 김광현과 장원준은 5월 24일 경기에 나서게 된다. SK 김광현은 마산에서 NC를 상대하게 하고 두산 장원준은 잠실에서 KT와 만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두 선수의 승부에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