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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불경스러운 홍수 심판이야기 노아 - Journeyman이 바라본 세상
불경스러운 홍수 심판이야기 노아

노아17

모두 다 아는 이야기를 또다시 하려거든 필연적으로 각색이 필요하다.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하지 않던가. 사실대로만 전달해서는 입만 아플 게 뻔하다.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고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려면 무언가 다르고 새로운 부분이 있어야만 한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니 어차피 이 세상은 돌고 돌기 마련이다. 다만, 누가 더 흥미롭게 말하느냐의 차이다.

‘마녀사냥꾼’이라는 이색적인 변신이 눈길을 끄는 ‘헨젤과 그레텔'(Hansel and Gretel: Witch Hunters, 2013)은 무서운 마녀에게 벌벌 떨던 두 남매를 무자비한 마녀사냥꾼으로 변신시켜 놓았고, ‘귀여운 여인'(Pretty Woman, 1990)의 히로인 줄리아 로버츠의 ‘백설공주'(Mirror, Mirror, 2012)는 백설공주가 아니라 왕비의 시각으로 그려진 영화였다. 재미는 차치하고 그들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노아의 방주’에 대한 내용이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관점에서 기대했을 것이다. 하나는 타락한 인간들에게 벌을 내리고 유일한 의인인 노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신의 섭리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와 상관없이 거대한 스케일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기대했을 것이다. 인류 멸망에 대한 내용이니 재난 영화의 소재로 이만한 것도 없겠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노아'(Noah, 2014)는 둘 중의 어느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한 졸작이었다. 종교 영화라고 보기에는 신에 대한 불경스러운 내용들로 가득하고, 재난영화라고 하기에는 그 표현이 지나치게 무디다. 종교적인 내용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불쾌감을 줄 것이고, 장대한 스케일의 재난영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따분함을 선사해줄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노아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가 애매하다는 점이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 6:9)라는 부분으로 노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저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숨어 사는 은둔형 외톨이에다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는 한낱 광신도로만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추론은 가능하다. 노아가 세속의 때를 묻히지 않고 의인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하게 세상과 격리되어 살았기 때문이고, 맑은 하늘에서 세상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주장도 모자라 산 위에 배를 만든다고 할 정도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광신도라 손가락질 받았을만하다. 이런 부분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아도 인간의 상상력으로 충분히 유추해봄 직한 일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노아가 왜 사람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지, 그가 섬기는 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은 이 영화를 점점 수렁으로 빠트리고 만다. 여기에 노아를 도와 방주를 만드는 타락천사들(또는 감사자들)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아라랏산에 만든 노아의 방주만큼이나 이야기를 산으로 이끌고 간다.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 부분을 인간의 상상력으로 메워보려 하지만 오히려 엉뚱한 길로 들어서게 만드는 것이다.

방주를 짓기까지 판타지이던 장르가 홍수 이후부터는 심리극으로 갑작스럽게 전환되는데 이때부터 노아의 모습은 은둔형 외톨이에서 미친 광신도로 변신하기 시작한다. 인간을 심판하겠다는 신의 계시를 인간의 씨를 말리겠다는 의미로 해석한 노아는 자신들이 마지막 인류가 되어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가족 간의 불화를 초래한다. 신의 계시와 인간 사이에서 방황하는 심적 갈등이 아니라 끔찍한 광신도의 모습만 남을 뿐이었다.

판타지로 만들려거든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서 신선하게 만들었어야 했고, 재난영화로 만들려거든 훨씬 스펙터클하게 만들었어야 했으며, 심리극으로 만들려거든 보는 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심리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영화는 이도 저도 아닌 영화라 하겠다. 상상력은 신선하지 못하고, 액션은 스펙터클하지 못하며, 심리극으로서도 수준 이하다. 기대만 잔뜩 하게 만들고는 아무 것도 없는 일종의 공갈빵인 셈이다.

노아(Noah, 2014)
모험, 드라마, 판타지 | 미국 | 139분 | 2014.03.20 개봉 | 감독 : 대런 아로노프스키
출연 : 러셀 크로우(노아), 제니퍼 코넬리(나메), 엠마 왓슨(일라), 안소니 홉킨스(므두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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