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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더 이상 순결하지 않은 섬 - Journeyman이 바라본 세상
더 이상 순결하지 않은 섬

목섬

대부도와 영흥도 사이에 있는 선재도는 막내 여동생과 같은 섬이다. 크기로 보나 인지도로 보나 대부도가 맏이라고 한다면 영흥도는 둘째라고 할 수 있고 그 사이에 위치한 작은 섬 선재도는 막내인 셈이다. 선재도는 대부도에서 영흥도 가는 길목에 있는 섬으로 대부도와 선재도는 선재대교로 연결되어 있고 선재도에서 영흥도는 영흥대교로 이어져 있다. 마치 세 자매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듯하다.

선재도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포토 에세이 ‘아버지의 바다’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하늘의 선녀가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내려와 춤을 추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작은 섬을 4대째 지키고 있는 어부와 그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도시의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아비의 실명을 접하고 섬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아들이 절망을 딛고 어부로서의 삶을 시작한 아비의 모습을 사진과 글로 남긴 책이었다.

선재도는 작고 아담한 섬이다. 지도에서 확인해 보면 대부도의 1/10 정도 크기이고 영흥도에 비해서도 1/4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도나 영흥도와 달리 선재도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여리기만 한 여동생처럼 품어주고 싶은 생각 말이다. 영화 ‘은교’ 포스터에 쓰여있던 ‘나의 영원한 처녀’라는 표현이 딱 그 짝인 것만 같다.

선재대교를 지나면 바로 왼편으로 목섬이 있고 조금 더 가면 측도가 나온다. 둘 다 제부도처럼 물때를 맞춰야만 들어갈 수 있는 섬이다. 목섬은 작은 무인도로 산책 삼아 들어갔다 올 수 있고 측도는 사람이 사는 섬으로 차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측도로 가는 길은 물이 들어온 후 어두워지면 가로등만 운치 있게 바다에 목을 내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선재도가 이제는 더 이상 순결하지 않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4년 만에 다시 찾았던 선재도는 마치 영화 ‘은교’에서 질펀하게 정사를 벌이는 은교의 모습을 몰래 엿본 듯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들 뿐이었다. 청순했던 모습은 더 이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의 영원한 처녀’로 남아주길 바랬던 서해의 작은 섬 선재도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선재도에 대해 인상이 구겨지기 시작한 것은 모처럼 찾아간 윈드빌(혹은 바람의 마을)이라는 펜션 겸 식당에서였다. 풍차 모양의 건물에다 길가에 있어서 찾기도 좋고 숙박과 식사를 겸하기에 좋은 곳이었는데 무엇보다 바다와 인접해 있어서 석양 무렵이나 새벽녘에 바닷가를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날씨만 좋다면 바다를 배경으로 야외 식탁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가보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바다 쪽으로 가는 길이 모두 폐쇄되어 있었고 그와 더불어서 야외 테이블도 없었다. 그냥 막아놓은 게 아니라 그곳에다 농작물을 빼곡히 심어놓아서 억지로도 바다로 내려갈 수가 없었다. 한눈에 보아도 짜투리 땅을 활용하기 위한 용도라기보다는 무슨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바다 바로 옆이지만 바닷가 산책의 기회는 원천적으로 봉쇄된 셈이었다.

또한, 윈드빌에서 멀지 않은 목섬으로 향하는 출입구도 자물쇠로 잠겨있었다. 위치가 버스승강장 근처라 다른 차들의 무단 주정차를 막기 위한 조치인가 싶었는데 가만히 보니 그보다는 바다로 향하는 입구를 단일화하려는 의도가 더 커 보였다. 그렇다. 목섬이나 바닷가로 가려거든 가벼운 산책이든 아니든 갯벌체험장 입구로만 들어갈 수 있었다. 입장료 1천원을 내지 않으면 바닷가 산책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목섬은 선재도에 들른 김에 가볍게 둘러보는 곳이다. 거창한 시설도 없고 남다른 풍경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섬으로 향하는 모든 출입구를 폐쇄하고 입장료를 내야만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분명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사찰은 둘러볼 생각도 없고 등산로로 갈 뿐인데도 길을 막고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입장료 1천원은 기꺼이 낼 수가 있지만 그 천원때문에 목섬에 대한 접근 자체를 통제한 발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내게 있어 선재도는 고향집처럼 언제고 한 번쯤 다녀오고 싶은 곳이었다. 일상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석양의 바닷가를 걸으며 상념에 잠기기도 하고 새벽녘 바닷바람을 가슴 깊이 들이켜 보기도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는 찾아가고 싶지 않을만큼 장삿속으로 가득한 곳이 되어 있었다. 순결을 잃은 은교에 대한 분노로 정신이 아득해지던 이적요 시인이 받았던 충격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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