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젊고 싱싱한 여배우들에게 밀려난 상태지만 한동안 로맨틱 코미디를 주름잡던 이름이었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중박 이상은 치기에 흥행 보증수표 대우를 받기도 했었다. ‘스피드'(1994)나 ‘네트'(1995)처럼 긴장감 넘치는 영화도 있지만 ‘당신이 잠든 사이에'(1995)나 ‘미스 에이전트'(2000)처럼 아무래도 웃음을 동반한 영화에 더 어울려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니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그녀가 출연하기도 하지만 그녀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남자 배우 역시 진중한 인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피스메이커'(1997)와 같은 액션 영화도 찍었고 ‘굿나잇 앤 굿럭'(2005)을 비롯한 여러 편의 연출을 맡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눈가에는 악동 같은 장난끼가 가득하다. 그 둘이 호흡을 맞췄다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닐 리 없었다. 바로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 이야기다.
만일 나와 같은 오해 아닌 오해를 하고 있다면 더 이상 영화 정보를 훑어보지 말고 당장 영화관으로 향하기 바란다. 그래야 더욱 긴장감 있고 스릴 있는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 2013)’는 그렇게 봐야 하는 영화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심지어 출연진의 이름이나 줄거리는 전혀 모른 채 그저 몸과 마음을 우주로 보내야 한다.
네이버 영화에 소개된 줄거리도 짤막하다. 제작노트를 비롯해서 주저리주저리 읊어대던 다른 영화에 비하면 초라하기까지 하다. “외계인도 우주전쟁도 없다! 이것이,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진짜 재난이다! 지구로부터 600km, 소리도 산소도 없다. 우주에서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우주를 탐사하던 스톤 박사는 폭파된 인공위성의 잔해와 부딪히면서 그곳에 홀로 남겨지는데…” 이게 다다. 더 이상 알 필요도 없다.
더 황당한 건 출연진이다. 익히 알고 있다시피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가 주연을 맡았는데 그 외의 배우는 사실상 없다. 애드 해리스라는 배우가 이름이 보이지만 실물은 등장하지 않고 우주비행 관제센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만 나온다. 에릭 미쉘즈나 바셔 세비지 역시 마찬가지다.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와 함께 우주를 유영 중인 인물도 있었으나 그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처럼 이 영화는 모든 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점이다. 그 이후에 대해서는 직접 확인하는 게 좋다. 더 알려고 해서도 안 되고 더 알 필요도 없다.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매번 짜릿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태어나서 가장 전율을 느꼈던 순간은 처음 탔던 때일 것이다. 단순한 스토리의 영화지만 그만큼 몰입도가 대단하다.
가급적이면 아이멕스를 비롯한 큰 화면에서 감상하는 게 좋겠다. 메가박스 동대문의 경우 화면이 큰 M관에서 상영하기를 바랬으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게 밀려난 상태여서 아쉽기만 하다. 또한, 메가박스 동대문 8관은 화질이 선명하지 못해서 지구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없었다. 사운드가 아쉬워서 분노해본 적은 있어도 화질 때문에 화나기는 또 처음이다. 아이맥스 상영관을 기웃거리게 만드는 이유다.
다만 출연진이 적고 스토리가 단조로우므로 지루할 수도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평이 극단적으로 엇갈릴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 경우에는 혼자였고 극도로 몰입할 수 있었기에 마치 산드라 블록과 함께 힘겨운 우주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느낌이 들 정도였다. 디지털 상영관이었지만 흡사 4D 상영관인 듯 온 몸으로 긴장하며 볼 수 있었다. ‘그래비티’는 그렇게 보는 영화다.
그래비티(Gravity, 2013)
SF,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 미국, 영국 | 90분 | 2013.10.17 개봉
감독 알폰소 쿠아론 | 출연 : 산드라 블록(스톤 박사), 조지 클루니(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