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은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지난 4월 14일은 텍사스에게 잊고 싶을 만큼 끔찍한 악몽의 날이었다. 2:2 동점 상황에서 10회말 끝내기 홈런을 맞고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끝내기 홈런을 허용했던 텍사스의 투수는 좌완의 제이크 디크먼이었고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은 이대호였다. 이날 이대호는 설발 명단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애덤 린드 대신 타석에 들어서 짜릿한 끝내기의 주인공이 되었었다.
그 둘이 그때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났다. 12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세이프코 필드였다. 이번에도 정규 이닝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한 경기는 연장으로 접어들었고 10회말 시애틀 공격에서 애덤 린드 대신 이대호가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 텍사스의 두 번째 투수 디크먼은 선발 투수 콜비 루이스의 뒤를 이어 9회부터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연장 10회말 1사 1루 상황이었다. 디크먼은 선두 타자 넬슨 크루즈에게 중전 안타를 맞았으나 카일 시거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은 후였다. 아직 교체 타이밍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이대호가 타석에 들어서자 텍사스 벤치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날의 악몽이 떠오른 탓일 게다. 텍사스에서는 디크먼을 내리고 오른손 투수 매트 부시에게 뒤를 맡겼다.
부시의 초구를 지켜보았던 이대호는 두 번째 공에 방망이를 휘둘렀다. 145km짜리 슬라이더였다. 이대호의 타구는 우익수 앞에 떨어졌고 1사 1-2루의 득점 기회로 이어졌다. 기다렸던 끝내기 상황은 나오지 않았어도 이대호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던 타석이었다. 레오니스 마틴이 중견수 라인드라이브로 아웃된 후 스티브 클레벤저의 볼넷으로 2사 만루의 기회를 잡았다. 시애틀의 끝내기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만 케텔 마르테가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나면서 승부는 연장 11회로 넘어가야 했다.
시애틀은 연장 11회초 텍사스의 4번 타자 루그네드 오도어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연장 10회부터 던졌던 다섯 번째 투수 마이크 몽고메리가 오도어에게 비거리 135m짜리 대형 중월 홈런을 허용한 것. 10회에 끝내지 못한 아픔이 더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시애틀에게 남은 이닝은 단 하나. 아웃 카운트도 세 개뿐이었다.
11회말 시애틀의 시작은 좋았다. 선두 타자 아오키 노리치카가 몸에 맞으면서 무사 1루의 동점 기회를 잡았다. 션 오말리의 번트가 1루 주자 객사로 이어졌고, 로빈슨 카노의 타구가 중견수 뜬공에 그쳤어도 크루즈의 안타로 2사 1-2루의 기회는 계속되고 있었다. 시거가 살아나간다면 이대호에게 또다시 짜릿한 끝내기의 기회가 돌아올 터였다. 그러나 시거의 타구가 우익수 정면으로 향하면서 이대호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텍사스의 악몽은 한 번으로 끝나야 했다.
오승환의 세인트루이스와 홈경기를 치른 피츠버그 강정호는 4번 타자 겸 3루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1안타를 기록했고, 3경기 연속 등판했던 오승환은 출전하지 않았다. 강정호는 9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세인트루이스 선발 투수 카를로스 마르티네스의 156km짜리 투심 패스트볼을 때려 안타로 연결시켰다. 피츠버그는 8.2이닝 동안 1실점한 마르티네스의 구위에 눌려 1:5로 패했다.
보스턴과 홈경기를 가진 미네소타 박병호는 무안타의 침묵이 계속되었다. 전날 4연속 삼진에 이어 이날에도 보스턴 선발 투수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에게 두 개의 삼진을 더하면서 6연타석 삼진으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박병호는 7회 대타 오스왈도 아르시아와 교체됐고 미네소타는 보스턴에게 4:15로 대패하고 3연패에 빠졌다.
한편, 토론토 원정에 나선 볼티모어 김현수는 8회초 1사 2-3루에서 놀란 레이몰드 대신 대타로 출전해 풀카운트 접전 끝에 볼넷을 골라냈다. 볼티모어는 6:11로 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