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지게 가난했던 청계천 판자집

청계천

정작 우리도 잊고 지내는 일이 있다. 한때는 우리 역시 지독하게 가난했던 나라였다는 사실 말이다. 유수의 강국들과 경제적으로 비슷한 수준이 되다 보니 너도나도 어깨에 힘만 들어갔나 보다. 그런 자만심에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곳이 있다. 청계천 판잣집이 바로 그곳이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을 증언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민낯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 하겠다.

청계천 광장에서 물길을 따라 쭉 내려가다 보면 마장동 부근에 이르러 두 개의 시설과 마주하게 된다. 오른 편으로는 현대식의 청계천문화관이 서 있고 그 앞으로는 청계천 판잣집이 설치되어 있다. 청계천문화관은 지나치게 화려한 데 비해서 청계천 판잣집은 지나치게 초라하다.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흡사 21세기와 20세기가 마주 보고 있는 형국이다.

청계천문화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 이룬 최대 치적이라고 내세우는 청계천 복개를 홍보하는 곳으로 굳이 이렇게까지 화려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나치다. 그에 비해 청계천 판잣집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지난날의 기억들을 증언하는 곳으로 만일 둘 중에서 하나만 남기라고 한다면 겉모양만 번지르르한 청계천문화관보다 훨씬 유익한 청계천 판잣집을 선택하겠다.

이곳은 5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청계천 광장 방향으로 시작해서 첫 번째는 교실이고 두 번째는 음악다방이며 세 번째는 구멍가게이고 네 번째는 단칸셋방이며 다섯 번째는 만화방이다. 첫 번째 방인 교실에는 마룻바닥에 옛날 책상을 비롯해서 그 시절의 학생들 졸업사진까지 벽에 붙어있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문을 걸어 잠근 채 개방하지 않고 있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교탁에서 노트북을 만지는 모습이 언뜻 보일 뿐이었다.

두 번째 방은 다방이다. 그냥 다방이 아니라 음악다방이다. 한켠에 MUSIC BOX라고 쓰여있는 DJ 박스가 있고 벽에는 추억의 음반 자켓들이 가득하다. 턴테이블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소파에 앉아 직접 커피를 마셔볼 수도 있는데 옛날과 달리 순전히 셀프서비스다. 커피도 봉지커피로 타 먹는 식이다. 공짜는 아니고 옆에 모금함이 있으므로 양심껏(?) 커피값을 내야 한다.

음악을 틀어주는 DJ는 없지만 아련한 추억을 더듬으며 음반 자켓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음반은 특정 시대에 머무르지 않고 7~80년대를 망라한다. 저런 시절도 있었지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게 만든다. DJ들만 들어갈 수 있는 절대 특권 지역이었던 MUSIC BOX에는 400원짜리 TV가이드가 2권 놓여있는데 당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강석우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정말 그땐 강석우의 인기도 대단했었지…

다방에서 옆으로 넘어가면 구멍가게로 들어설 수 있다. 지금의 문방구처럼 그 시절 아이들에게 백화점 역할을 하던 곳이다. 당시 인기 좋았던 군것질들과 장난감들이 시간여행이라도 떠나온 듯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선반에는 분유 깡통과 음료수병, 라면 봉지 등이 놓여있기도 하다. 지붕에는 미원이 걸려있고 구석에는 하드가 들어있던 길쭉한 아이스크림 통도 보인다.

그 옆으로는 단칸짜리 셋방이 이어진다. 단칸방을 둘로 나눠 오른 편에는 이불과 서랍장이 놓여있고 왼편에는 세간과 책상이 놓여있다. 세간이라고는 석유곤로, 요강, 물주전자, 벽걸이 괘종시계 등에 불과하지만, 그 시절을 대표하는 물품들이 되겠다. 책상 아래 깔린 모포(일명 미군 담요)도 새롭고, 창밖에 놓인 장독대도 정겹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지금보다 행복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마지막은 만화방이 장식한다. 만화도 만화지만 이곳에서는 학창시절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교복과 교련복이 준비되어 있다. 교복 세대들은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교복 입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그렇지 않은 세대들은 부모의 권유 또는 강요에 따라 교복을 입어본다. 청계천 판잣집은 별도의 입장료 없이 무료로 개방하고 있지만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이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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