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갔을 때였다. 알프스보다 높다는 추크슈피체(Zugspitze)를 품고 있는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Garmisch-Partenkirchen)으로 들어섰을 때 동화 같은 환상적인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일명 프레스코 벽화 마을로 알려진 곳으로 건물 여기저기에 고풍스럽고 기품 있는 그림들이 가득했었다. 산 위 추크슈피체에서 느꼈던 벅찬 감동을 산 아랫마을에서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종교적인 성격의 프레스코와는 분위기가 다르지만 초라한 산동네가 화려한 벽화마을로 변신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동피랑 벽화마을이 독일 가르미슈보다 더 획기적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동피랑은 소문을 타고 통영의 명소가 되어 있었고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바로 송중기와 문채원이 주연을 맡았던 KBS 2TV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가 바로 그 드라마다.
드라마를 관심 있게 지켜본 입장이라면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를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동피랑을 찾았던 어느 모자는 드라마 속의 장소를 놓고 여기가 어디이니 저기가 어디이니 하면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제대로 챙겨보지 못했다면 그만큼의 감동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저 경치 좋고 전망 좋게 잘 꾸며놓은 산동네 정도로만 생각될 수도 있겠다.
말하자면 나는 후자에 속한다. 어느 모자가 할머니 바리스타 까페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언쟁을 벌여도 무슨 소리인가 싶을 뿐이다. 드라마의 촬영 장소였다는 꼭대기의 쉼터도 간이매점에 불과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드라마의 영향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라리 동피랑이 나오는 부분만이라도 다시보기를 통해 보고 올걸 그랬나 보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자격지심에서 자유로워진다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리기 마련이다. 드라마의 내용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동피랑 그 자체에 집중하는 식이다. 그러면 드라마와는 다른 나만의 인연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동피랑은 중앙시장 끝부분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실 그곳이 입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초행자 입장에서는 팻말을 따라가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동피랑 곳곳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곳에 숨어있는 재치 있는 표현들을 발견하는 것도 신선한 즐거움이었다. 언덕 위에 마련되어 있는 앞마당을 ‘동피랑 스카이라운지’라 부르고 그 주변에 만들어진 간이매점을 ‘몽마르다 언덕’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이 그렇다. 단순히 벽화마을이 아니라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가득한 흥미진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벽화도 벽화지만 동피랑 마을을 올라가야 하는 이유는 통영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때문이다. 산동네이기에 누릴 수 있는 호사라고 하겠다. ‘동피랑 스카이라운지’에는 동전 넣고 볼 수 있는 망원경도 준비되어 있지만, 맨눈으로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몽마르다 언덕’의 옥상전망대에서는 목을 축이며 통영의 경치를 감상할 수도 있고 그네에 앉아서 바라볼 수도 있다.
동피랑에서 가장 인기 좋은 그림은 날개가 그려진 곳이다. 날개를 활짝 펼친 모습과 뒤로 모은 모습 등 두 개의 그림이 있는데 휴일에 이 그림 앞에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으려면 몇십 분은 대기해야 할 정도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곤 한다. 이른바 인증샷이다. 유명한 그림인 만큼 키를 맞추기 위해 바닥에 나무받침대가 놓여 있다는 점도 이채롭다…